시작은 그랬다. 기름이 떨어져 근처 주유소로 가던 중이었다. 늦은 밤이었고, 좌회선 2차로에 서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드럽게 좌회전을 하던 그때였다. 남편이 갑자기 놀라 소리를 지른다.
"뭐 하는 거야? 거기 1차선이잖아! 2차선에서 좌회전했으면 2차선으로 들어가야지!!!
이거 진짜 매너 없는 거야. 이러면 진짜 김여사야! 아니 왜 이런 거를 몰라?!"
분명 나는 내 옆 1차선에 버스와 함께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고, 버스가 먼저 1차선을 돌아 들어간 후 나도 2차선에서 따라 들어갔는데, 내가 버스뒤에 1차선에 있었다. 다행히 뒤에 차는 없었다.
이상했다. 바닥에 점선을 따라서 잘 좌회전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의 소리에 놀란 나는 어찌할지 몰라 우왕 좌와 하다가 옆에 있던 마트 진입로로 들어갔다. 뭐가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고, 놀라서 잘못 길을 들었다. 그리고 마트 주차장 입구에서 역주행을 했다. 남편은 다시 말한다.
"뭐 하는 거야? 이거 역주행이야!!"
물론 늦은 밤이라 차가 하나도 없었고, 불 꺼진 야외 주차장이라 이정표도 잘 안보였다. 그 소리에 더욱 당황했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던 나는 주차하는데도 어버버 실수를 했다. 남편은 내려서 계속 진짜 사고 날 뻔했다고, 돌아가신 엄마도 첫 사고가 그렇게 났다면서, 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 물론 내가 잘 못 한 건데, 남편의 화내는 목소리 톤과 강압적인 말투를 듣고 있자니, 깊은 빡침이 올라왔다. 남편은 차에서 내려걸으며, 이런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순간 나는 남편을 힐난하듯 쳐다본 후 소리쳤다.
"나는 분명 잘 돌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어! 내 잘 못이야! 잘 못인데,
근데 당신! 지금 그렇게 까지 말해서 얻고 싶은 게, 뭐야? 그 태도가 뭐야? 나를 창피 주고 싶어?! "
”아니 나는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 건데, 내가 말이 좀 세게 나갔네! 그러려던 건 아니야! 미안해! “
나는 남편과 거리를 두고 앞으로 나갔다. 남편은 뒤에 자꾸 같이 가자고 말한다. 대충 기름을 넣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나는 아무 말 없이 빠르게 운전을 했다. 나의 눈치를 살피던 남편은 주행은 참 잘한다며 너스레를 떤다. 마음이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고, 집에 가서 브런치에 글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남겨서 나의 이 화난 감정을 여과 없이, 마구마구 쏟아내리라 다짐한다. 집에 돌아와 계획대로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에 로그인을 했다. 잠시 후 남편이 들어와서 조심히 말한다.
"내가 아까 미안했어! 그렇게 까지 말할 건 아니었는데, 나 돌아와서 약 먹었어! 화 풀어"
남편은 화가 조절이 안될 때 신경안정제를 먹는다. 물론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이다. 사업실패로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는 남편은 정기적으로 병원에 간다. 거기서 필요시에 먹으라고 하는 약이 있는데, 그걸 먹고 온 모양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혼자서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까 나도 화가 나서 속으로 남편에게 쌍욕을 했다. 아마 그래서 더 감정에 휩싸였을 것이다.
남편은 평소에 말을 예쁘게 잘하는 사람이다.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누구보다 나를 잘 이해해 준다. 어떨 때는 나보다 더 나에 대해서 잘 안다. 그리고 항상 나에게 고마워하는 사람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남편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남사친이자,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이다. 그런 남편은 사업 실패 후에 굉장히 예민해졌다. 감정 변화가 심해, 화를 참기 힘들어했다. 본인도 노력을 많이 한다. 남편이 노력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것도 잘 알기에, 약을 먹고 진정이 됐다는 남편을 보니, 다시 마음한구석이 짠해졌다. 그렇지만, 내가 참기만 해서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잘 안다. 다만 그 자리에서 같이 부딪히게 되면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으니, 잠시 내가 멈춘다. 그리고 난 화가 나면 딱히 말이 나오지도 않는다. 마음속에서 많은 생각이 있지만,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음날 아침에, 남편과 아침을 먹으면 어제의 일들을 말했다. 남편은 다시 한번 사과를 한다. 나는 기분이 나빴던 점을 자세히 말했고, 남편은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우리 부부는 우리 부부만의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한다. 지인들은 어떻게 그 결혼을 유지했냐고 말한다. 결혼 생활 동안 우리 부부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시댁에 적응하느니라 힘들었고, 남편의 사업 실패로 가정 경제가 파탄이 났고, 돈 때문에 친구들을 잃었고, 시부모님은 아프셨고, 아이들은 어렸다. 그런 모진 풍파에도, 내가 이 결혼을 유지한 것은 남편과의 의리 때문이었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고, 서로를 아끼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고통을 피하지 않았고, 서로를 위로하며, 서로를 위하며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