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09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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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 월요일,
아 일어나기 힘든 아침이어라.
남편을 보내 놓고 다시 눈을 감았다.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릴 꿈을 꾸고 일어났다. 몸만 일으키면 되는데 다시 눕고 눕고 침대 밑 땅을 밟지 않는 이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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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스한 모습으로 물을 마시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점심을 챙겨 먹었다. 일본 손님이 선물로 사다 준 머그면(옛 추억이 그리워 사달라고 부탁했다)을 꺼냈다. 초등학생 때는 이 정도로 작지 않았는데, 내가 큰 걸까 머그면이 작아진 걸까. 투명 유리컵에 탈탈 털어 넣고 물을 부었다. 동동 떠있는 팬더어묵을 보면서 기뻐하다가 한 두 젓가락 떠먹으니 없다. 또 하나를 꺼내서 물을 붓고 기다린다. 너무 작아서 기다릴 것도 없다. 이번에는 강아지 모양이 나를 반긴다. 내가 생각한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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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키워드는 사업자등록증.
이숭이월드(ESOONGE WORLD)가 공식적으로 세상 밖으로 나온 날이다. 아직 사업장이라 할 공간도 없지만, 종이 한 장으로 대단히 떨리고 설레고 긴장되는 감정을 맛보고 있다. 내가 사업자가 되다니. 남편 생일에 등록을 하다니. 이럴 때 나를 보면 고민과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으면서도 꽤 큰 결정이나 행동엔 과감한,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인 것 같다.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길이 9만 리일지라도... 나는 오늘 이 감정에만 충실할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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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분을 뭘로 다스릴까 고민하다가 화장실 청소로 정했다.
일단 지저분한 상태였고, 화장실이 깨끗할 때까지 청소를 하면 되는 끝이 있는 일이었다. 슥샥슥샥 땀을 뻘뻘 흘리는 반면에 반짝해지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상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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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나물비빔밥, 애호박 부침개, 팽이버섯전, 국물김치.
집에 있는 야채를 꺼냈다. 삼색나물에 무순, 당근을 넣고 참기름이랑 고추장 넣고 슥슥 비벼 먹는 우리. 하루 일과를 주고받다가 자연스레 사업자등록증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이 대화의 끝은 고맙다는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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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페인 커피를 내렸다.
치즈케이크 두 조각을 꺼내고 영화 ‘기생충’을 봤다.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하게 해서 케이크를 먹을 시간이 없었다. 왜 다들 영화를 보고 나오면 씁쓸하고 답-답한지 이해가 돼서 더 저릿했다. 장면, 대사 하나하나 곱씹어보면 더 슬퍼지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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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출장 가방을 챙긴다.
나는 거실 테이블에 앉아서 감사일기와 하루 일기를 쓰고 있다. 매일 시간순으로 있었던 일을 적고 있어서 구구절절하지만, 조금이라도 기억할 방법이기에 오늘도 고수해야지. 달걀이랑 고구마를 삶는 소리가, 코끝에 와 닿는 냄새가, 잔잔히 흘러나오는 여름의 끝자락 노래가, 하루를 기록하는 타각타각 키보드 소리가, 흥얼거리는 남편의 콧노래가 좋은 9월의 월요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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