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_
_
1월 30일 목요일,
일어나면 곧장 화장실로 간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나와서 반쯤 감긴 눈으로 남편 안경알을 닦는다. 커튼을 열어젖히고 도톰한 옷 하나를 껴입었다. 사과 한 개를 깎고 쑥 가래떡을 구워서 통에 담았다. 요즘은 삶은 달걀 두 개가 버거운지 당분간 한 개만 먹을 거라고 했다. 물 한 잔을 마시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빠빠이 인사를 나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났다. 어제랑 같은 패턴의 하루 시작.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일찍 씻기. 굿모닝.
.
지난주에 무기력하던 감정은 거의 사라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목소리 톤도 높아졌고 잘 웃는다. 아무 말 대잔치도 잘 벌이고 장난을 잘 치는 내가 됐다. 나 스스로가 무척 낯설게 느껴지던 일주일을, 본의 아니게 내 눈치를 본? 남편이 미안하기도 하고 애써준 마음이 고마웠다.
.
현미차를 끓인다.
구수한 향이 퍼지면서 코 끝에 스칠 때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 차를 준비하고 마시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기분이랄까. 마음의 평화. 평화로운 시간. 평화로운 이숭이. 아 좋다. 달달한 게 먹고 싶을 땐 바사삭 강정을 먹는다. 미세먼지가 없는 시원한 하늘. 또 언젠가 이 날이 그리워질 것 같은 그런 날이다.
.
그 많던 현미차를 다 마셨다.
점심 대신에 사과를 먹었고, 오후엔 갑자기 목이 말라서 맥주를 꺼냈다. 안주는 나쵸. 원샷 아니 텐샷. 캔 하나를 똑 따서 10번 정도 끊어 마셨다. 아까 현미차를 마실 때랑 너무 다른 온도 차. 영화 ‘옥희의 영화’를 보고 낮잠도 즐겼다. 이 것 또한 평화.
.
저녁을 준비했다.
나는 낮에 맥주랑 과자를 먹었으니까 저녁을 건너뛰기로 했다. 밥을 먹을 수도 있었지만, 굳이 참아보기로 한다. 메뉴는 나물 비빔밥과 소불고기. 마늘, 버섯, 양파, 청양고추를 넣어서 고기를 구웠다. 파를 빼먹었다는 걸 일기를 쓰면서 방금 알았다. 늘, ‘잘 먹겠습니다’와 ‘잘 먹었습니다’ 인사를 하는 남편이 고마워지는 순간.
.
외투를 껴입고 나왔다.
갑자기 밀감이 먹고 싶어 졌다. 얼마 전에 맛있게 먹었던 브랜드가 수소문 끝에 오케이 마트에 판다는 걸 알아냈다. 밀감 찾아 삼만리. 비가 오는데도 우산도 없이 둘이 돌아다녔다. 집 근처부터, 저 쪽 동네까지 가봤지만 없었다. 아쉬워서 밀감 한 봉지랑 귤 한 손을 샀다. 오늘은 이거 먹고 인터넷으로 주문해야지. 밀감 좋아. 좋아 밀감.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