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9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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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9일 일요일,
언제 잠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다.
코 끝에 유칼립투스 향이 스친다. 자고 일어나면 여독이 절로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잘 자’라는 남편 문자를 보고 늦은 새벽에 답장을 했더니 곧바로 답장이 왔다. 깨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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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빨래를 하고 집 정리를 했다.
갑자기 하루 동안 속을 비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틈만 나면 배가 고파지는데 2주를 어떻게 참았나 모르겠다. 대단해 이숭이.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에 고무나무는 돌돌 말린 잎을 활짝 펼쳤다. 나날이 새 잎의 크기가 커지고 있다. 내 눈에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초록잎들. 처음에 우리집에 왔을 때 잎이 10개 조금 넘었는데, 이제는 배가 넘었다. 초록 화분을 하나 더 들여보고 싶다가도 하나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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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책을 펼친다.
지금까지 연설문 중에서 제일 쉬운 문장으로 되어있는 ‘브라이언 트레이시’. 좋은 습관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거침없이 알려주고 있다. 그중에서 제일 와 닿았던 자기 단련 방법. 하고 싶을 때, 하기 싫을 때에도 어쨌든 하고 마는 것. 내겐 끄적이는 것, 낙서하는 것, 기록하고 일기를 쓰는 것이 그랬다. 이제는 운동과 영어공부, 감사일기를 쓰는 것도 추가가 됐다. 꾸준히의 힘. 이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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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책상을 처분했다.
깔끔하고 예뻤는데 공간을 많이 차지해서 중고마켓에 내다 팔았다. 오후에 가구를 보러 오셨다가 쿨하게 들고 가셨던 아저씨. 쿨거래 좋아요 좋아. 남편이 그 돈으로 통닭을 사 먹자는 말에 갑자기 반했다. 어쩜 그렇게 멋진 말을 할 수 있죠?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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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열차를 타고 내려온 남편.
바람이 많이 불어서 역 앞에 잠바를 들고나갈 생각이었다. 조금 늦게 나온 바람에 쫑쫑 걸음으로 바삐 걸었는데, 저 멀리서 웬 반바지를 입은 남자가 오고 있었다. ‘저 사람은 아니겠네’하면서 스쳐 지나가는데 남편이다. 보자마자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여보~~~ 왜 반바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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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물만 마시고 잘 버텼는데...
나쵸 한 봉지를 열었다. 거기서 끝이었으면 좋으련만... 서울에서 사 온 카스테라를 한 조각씩 나눠 먹었다. 나 2주일 어떻게 참았지???? 어쨌든 남편이 집에 오니 집이 사람 온기로 꽉 찼다. 내 배도 꽉 찬 건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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