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5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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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토요일,
새벽 두 시, 세차장에 가서 때빼고 광내고 온 남편은 녹초였지만 뿌듯해하고 있었다. 몸은 피곤한데 누웠을 때 보이는 얼굴은 몹시 만족스러운 상태. 저렇게도 좋을까. 샤워한 후에 에어컨, 선풍기, 침대는 최고의 행복. 꿀잠자기 좋은 온도, 늦잠자기 좋은 날이다. . 아침부터 반기는 나무의 톡톡톡. 배 위에 올려둔 남편의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작은 신호. 그럴 때마다 남편의 눈이 똥그래진다. 태동인지 아닌지 몰랐던 날, 그러다 긴가민가 궁금해하곤 했는데, 그 톡톡거림이 태동이라고 확신하던 날 내 눈도 똥그래졌던 걸로 기억한다. 몇 주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신기해하는 중이고, 더 느껴보고 싶어서 눈을 감고, 부러 숨을 참고 집중하는 나를 발견한다. 꼬물꼬물 뭐하면서 보내고 있을까 우리 나무. . 배가 고프다는 말에 바로 점심을 차려먹기로 했다. 갑자기 등장한 비빔면과 비빔만두. 남편이 노릇노릇하게 만두를 굽고 비빔면을 삶는다. 나는 레시피대로 비빔장을 만들어 본다. 식초, 고추장, 고춧가루, 매실액기스, 올리고당, 참기름, 깨소금을 넣고 쉐킷쉐킷. 입맛을 돌게하는 새콤달콤 우리의 점심 식사. 그리고 ‘응답하라 1994’ 13화. 즐겁고 맛있는 시간. . 남편은 부모님 일을 도와드리러 갔다. 네모네모 로직을 끝내놓고 설거지, 빨래랑 수건을 갠다. 손톱 발톱을 깎고 청소기를 돌리는 주부 이숭이. 배가 눌리고 있어서 보통의 자세로는 깎기 힘든 발톱, 특히 왼쪽 새끼 발톱은 내가 임산부라는 사실을 제대로 느끼게 해줬다. 낑낑낑 다 깎고 이제 좀 쉬어볼까 하는데 남편한테서 전화가 온다. 장 보러 가자고. . 미리 적어둔 리스트를 꺼냈다. 우유랑 요구르트, 드레싱소스, 시리얼, 휴지랑 화장솜을 사야지. 마트 한 바퀴를 돌면서 충동구매들을 하고 마는 우리. 예를 들면 고기나 과자 같은 거. 폭우가 내리고 나서 금값이 된 채소들 틈에서 버섯, 쌈채소, 두부를 샀다. 생선이랑 콩나물도 살 뻔했는데 패스.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금세 지친 우리는 저녁을 해 먹을 힘이 없다. . 아이러니하게도 장을 보고 나면 꼭 외식을 하게 되더라. 그렇게 해서 가게 된 고깃집. 이열치열 삼겹살 파티를 열어보자. 고기 4인분에 사이다 두 병, 된장찌개랑 김치말이 소면을 먹어치운다. 탄산을 줄여보자던 약속 24시간도 안 지났는데 신명나게 건배를 하고 있는 이숭이.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며 세상 행복해 하는 이숭이. 진짜 잘 먹었다. 아! 그런데 아까 장을 봤던 것들이 고깃집에 다 있네? 고기, 버섯, 쌈채소, 두부, 심지어 콩나물까지.. 뭐야, 고깃집과의 운명적인 타이밍이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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