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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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목요일,
푹 잔 그와 못 잔 그녀.
아무 것도 모르고 잘 잤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나는 꿈 오백개 꿨는데. 축가로 케이윌 ‘선물’ 부를 거라고 어찌나 긴장했던지, 하아. 문을 꽉 닫고 자서 몰랐다고 하기엔 새벽에 퍼붓는 비와 흔들리는 창문, 무서운 바람소리. 다행히도 우리 동네와 집은 조용히 지나갔다. 일어나자마자 인터넷으로 주변 소식들을 살폈다. 대구도 일부는 정전이 있었고 피해들을 입었다고 했다. 그런데 마이삭 지나가고 하이선 온다고? 징글징글하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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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배고프다며 유혹에 넘어갈 뻔했다.
겨우 참았다가 대신에 아침에 남편의 시리얼을 탐냈다. 한 입만 달라고. 그리고 사과랑 복숭아도 몇 조각을 입에 넣는다. 남편을 문 앞에서 배웅하고 우리는 안부전화를 드렸다. 그는 우리 부모님께, 나는 시부모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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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자고 일어나서 몸을 움직인다.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점심은 시리얼과 도넛을 먹었다. 시도때도 없이 배가 고파서 당황스럽다. 그래도 먹을 때는 맛있게 음식을 마주했다. 네모로직과 동화책, 인터넷 쇼핑, 공인인증서 갱신으로 시간을 보내는 오후. 폰 진동소리에 들여다 봤더니 두근거리는 문자 하나가 와 있다. 산부인과에서 온 연락. 임신성 당뇨 검사 결과는 정상이라고. 반면에 빈혈 수치가 정상 범위보다 낮아서 철분제를 꾸준히 복용하란다. 휴우. 담담하려고 했지만 은근히 신경쓰였던 검사였는데 통과했다. 나무야 고마워. 지금까지 무탈하게 잘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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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쁨을 그냥 넘어갈쏘냐.
맛있는 음식으로 더 즐겨야지. 그렇게 해서 선물받은 통닭 기프티콘을 과감히 사용했다. 뿌링클과 치즈볼. 콜라로 목을 축이고 열정적으로 뜯어 먹는다. 오랜만에 ‘응답하라 1994’ 19화를 보면서 또 깔깔깔. 기분이 좋으니 뭐든 다 행복하고 즐겁네. 태풍이 지나가고 깨끗한 하늘도, 바싹 마르고 있는 수건도, 나와 함께 하는 남편도, 내 몸에서 같이 지내고 있는 나무도 다 감사한 9월의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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