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7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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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7일 일요일,
어중간하게 걸린 수유시간엔 누울 수도 없다.
12시 45분에 맘마를 먹였으니.. 적어도 한 시간 뒤에 잘 수 있겠군. 바로 잠들줄 알았던 나무는 흑백초점책을 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보일러 대신에 전기장판을 틀었고, 오랜만에 등을 지져보는 따뜻함에 하루종일 쌓인 피로가 쏴악 풀리는 것 같았다. 혹시나 추울까 봐 얇은 수건으로 아기를 덮어주고, 새벽 틈틈이 나무 발을 만져보곤 했다. 3시, 6시에도 그 어떤 날에도 맘마를 남기는 법이 없는 나무는 오늘도 잘 먹는다. 속이 불편한지 낑낑대다가 다시 꿈나라로 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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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교대근무 중.
내가 아침에 정신없이 잠들면 남편은 아기를 데리고 거실로 나간다. 맘마부터 재우고 놀아주는 건 그의 몫이었다. 그는 원래 아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실은 무서워서 좋아할 틈도 없었다. 아기가 근처에 있으면 얼어버리는 사람이 남편이었다. 그런데 나무가 배 속에 있을 때 조금씩 말도 걸어주고 책을 읽어주곤 했는데 그때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아기가 태어나서는 매일 안아주고 눈을 마주치고 스킨십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는지, 노래도 부르고 놀아주는 아빠가 되었다. 아기가 뭔지.. 180도 달라진 남편과 나는 나무홀릭. 귀여워서 사진을 찍고, 재미있어서 깔깔깔 웃고, 사랑스러워서 더 안아주고 표현하는 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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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 하늘은 유난히도 파랗다.
역시 좀 추운 날엔 미세먼지가 없다. 찬 바람이 우리 집에 머물도록 창문을 활짝 열어둔다. 청소를 하려던 순간 나무는 놀아달라고 찡찡, 안아달라고 찡찡거렸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많이 안아주려고 노력하는 나. 바로 나무에게로 달려갔다. 아빠처럼 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빛이 있는 곳을 좋아하는 나무를 위해 여기저기를 움직여본다. 그러다 잠이 들면 멈췄던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왜 엄마들이 슈퍼우먼이 되는지 알겠다. 바쁘게 움직여야만 집이 돌아가니까. 시간을 쪼개어서 청소를 하고 밥을 먹고 개인적인 일을 봐야 아기가 부르면 집중할 수 있었다. 그저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의 육아동지 남편이 있어 내가 이렇게 잠도 자고, 밥도 먹네. 아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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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케이크를 먹으려고 하는데 세탁기가 울린다. 빨래 널 시간이야 얘들아. 남편이 베란다에 나가서 빨래를 널길래 나도 도와주러 나갔더니 하는 말. ‘추운데 빨래 널고 있지말고 들어가서 케이크나 먹고 잠이나 자라.’ 뭔가 나를 위해 하는 말 같은데.. 고마운데 왜 혼난거 같지.. 말투가 전혀 다정하지 않은데 내용은 다정하네.. 이숭이는 케이크를 신나게 떠먹고 나무랑 낮잠을 자러 갔다고 한다. 어제처럼 옆에 끼고 쿨쿨쿨. 25도였던 우리집이 19도까지 내려갔다. 내복 입고 옷 입고 수면 잠옷입어도 추운 집. 너만 괜찮으면 되는데, 감기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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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목욕할 시간이야.
비몽사몽 나무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남편이 아기를 안고 내가 씻겨주는 2인 1조 목욕팀. 남편 옆구리를 뜨뜻하게 데워준 건 다름아닌 나무의 오줌이었다. 손바닥엔 방구 뽕뽕. 귀여운 건 다 하려고 하네. 맘마를 먹이고 재우려는데 오늘따라 할 말이 많은지 소리를 내는 나무. 옹알이하려나. 그러다 솔솔 풍기는 냄새를 보아하니 똥파티를 열었다. 치우는 중에 오줌 발사도 잊지 않는다. 또 다시 씻기고 갈아입히고.. 좀 전까지 잠투정하느라 흐느끼던 아가는 남편이 겨우 달래서 재웠는데, 또 맘마시간이 찾아왔다. 언제 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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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일된 나무,
머리가 많이 커졌다.(실제로 이 시기에 머리 둘레가 많이 커진다고 한다) 좋고 싫음이 느껴진다. 싫을 때 표현이 강한 편(울거나 찡그리거나 소리지름). 쪽쪽이를 억지로 하지만, 입에 넣는 즉시 90%는 바로 뱉는다. 쪽쪽이가 입 밖으로 튕겨나가는 속도가 빨라졌다. 혼자서 먼 곳을 보거나 모빌을 보면서 잘 놀기도 한다. 아빠 엄마 품에 안겨 있는 건 더 좋아하는데, 몸을 들 때 눕힌 것보다는 몸을 세우고 있으면 편한가 보다. 아마 여기저기에 보이는 것들이 궁금해서 쳐다보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옹알이를 시작하려는지 알 수 없는 외계어를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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