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0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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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0일 수요일,
별일없이 흘러가는 밤.
나무가 어느 정도는 잘 자는 것 같아서 덜 좀비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이 정도여서 다행이지. 그럼에도 피로는 점점 쌓여서 하품을 달고 살고 아기를 돌보다보면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입 안에 구내염이 커진지도 꽤 오래됐고, 목 담으로 시작해 여전히 뻐근한 목과 어깨, 바닥에서 일어날 때마다 소리나는 무릎 관절, 가려워서 미칠 것 같은 피부 트러블, 남편이 오지 않으면 씻을 수가 없어 땀에 찌든 몸, 꾀죄죄한 내 몰골이 말이 아니다. 헝클어진 머리, 목이 다 늘어난 티를 입고 손목호대를 한 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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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기가 곁에 있어서 괜찮았다.
아기가 싱긋 웃으면 따라 웃고, 옹알이와 작은 몸짓 하나에 혀짧은 소리를 내고, 새로운 걸 하나씩 해나갈 때마다 감동받는 도치맘이 되었다. 누군가는 그랬다.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할 때라고, 누워있을 때가 좋을 때라고, 기어다니기 시작하면 힘들 거라고. 나는 품고 있을 때도 좋았고, 지금도 좋으니까 다 좋은 거네. 임신했을 때는 병원가는 날이 기다려졌다. 태동으로 ‘아기가 잘 있다’고 믿었는 데다가, 움직임조차 신비로웠으니까 매순간이 좋았다. 그리고 이제는 언제든 만질 수 있고 안을 수 있어서 좋다. 앞으로 더 많은 날들이 고단하고 힘들겠지만, 그 힘듦을 애써 부정하지는 말아야지. 힘든 건 힘든 거고 좋은 건 좋은 거니까. 오늘도 힘차게 육아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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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남편은 그 와중에 열탕소독을 해놓고 갔다. 내가 하면 된다고 했는데 본인 시간을 할애해서 해주고 가는 그 마음이 고마웠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부지런히 움직여야겠다. 오전에는 맘마를 먹이고 같이 자고 일어났다. 오후엔 아기체육관을 열어서 부지런히 뛰게 하고? 틈틈이 집안일을 해치웠다. 작두콩차를 끓인 냄새가 온 집안을 구수하게 했다. 겨울에 마시는 차는 유난히 더 맛있는 것 같다. 밥 대신 샌드위치와 과자로 점심을 때운다. 요즘 나무는 안겨서 자고 싶은지 눕히면 싫어한다. 아주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들면 바닥에 내려놓지만, 자주 깨는 바람에 다시 재우고 안고 돌아다닌다. 유모차에 태웠는데 좀 앉아있는가 했더니, 잠드는가 했더니 금세 찡그렸다.
바깥에 있는 차들을 향해 외친다. ‘택시아저씨, 버스아저씨 나무 좀 태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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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오자마자 나무를 씻겼다.
얼마 후에 딩동 초인종이 울린다. 아니 이것은! 통닭! 연휴를 앞두고 기분도 낼겸 뿌링클이랑 치즈볼을 시켰다. 어찌어찌 나무를 돌볼 수 있을 것 같아 ‘윤스테이’ 3화를 틀었다. 순살이라 먹기도 편하고, 나무가 배려해줘서 맛있는 시간을 잘 보냈다. 잠깐 좀 누워보자고 셋 다 침대로 갔는데, 잘 자던 나무가 깨서 울기 시작했다. 배고프다고 엉엉. 오늘부터 분유량을 140ml, 수유텀은 3시간 30분에서 4시간으로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이렇게 다르지. 2시간 10분이 지나서 울면 어떡해야 할까. 결국 또 맘마를 먹이는 마음 약한 아빠 엄마였다. 아빠 품에 안겨서 잘 쉬고 있었는데 냄새가 스르륵 올라온다. 한밤 중 똥파티를 벌이고 또 맘마를 먹인다. 하루가 다 갔네. 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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