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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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일 금요일,
밤잠이 길어졌을까.
11시 반에 맘마를 먹이고 새벽 5시에 먹였다. 5시간이나 훌쩍 지났다. 나무도 엄마처럼 밥보다 잠이 먼저인 걸까. 배고픔을 잊고 자는 아기의 새근새근 숨소리가 참 포근했다. 여전히 ‘내가 낳은 아기’라는 사실이 꿈만 같다. 매일 조금씩 기록을 해둔 덕분에 아픔의 기억도, 잔잔한 행복의 기억도, 힘들었던 순간의 기억도, 감동스러운 기억 모두 고스란히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다. 난 과거를 잘 들춰보는 사람이라 그런지 아기를 품었던 날, 아기와 함께 했던 날들을 부지런히 꺼내본다. 그래서 내 일기가 제일 재미있고, 앞으로도 남길 일기들이 기대된다. 오늘따라 이것만큼은 꾸준히 해온 내가 꽤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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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나무는 4시간이 지나서 맘마를 찾는다. 자고 일어났을 때마다 더 큰 것 같은 우리 나무. 맘마는 어찌나 잘 먹는지. 아주 평범한 게 어려운 일인데, 아기는 별 탈없이 자라고 있어서 감사하다. 아침부터 동요메들리를 뽑아내는 엄마 이숭이와 그 옆에서 뭐라뭐라 노래를 부르는 나무.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꽤 큰 소리로 집을 채웠다. 그 중에서 ‘꼭 꼭 약속해’ 노래에 크게 반응하더니,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엄마는 나무가 있어서 참 즐겁고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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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커피 시간을 놓치고 밥 시간이 찾아왔다.
어제 남편이 예고했던대로 메뉴는 ‘삼색 소보로덮밥’. 참치, 소고기, 에그 스크럼블로 준비하다가 내 의견을 반영해서 깻잎을 추가했다. 4가지 재료 덕분에 알록달록 더 맛있어 보인다. 덮밥이나 카레를 먹을 때 우리는 너무나도 달랐다. 남편은 다 비비지 않고 그때그때 한 숟갈씩 떠서 먹고, 나는 비빔밥처럼 비벼서 한꺼번에 먹는 걸 좋아한다. 각자 방식대로 먹는데 남편 밥그릇이 유난히 단정하고 깨끗해보였다. 때마침 아기가 울어서 부랴부랴 먹고 일어섰는데, 이 때 남편이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빨리도 쓸어담았네’. 급해서 입에 털어넣긴 했지만, 처음 들어본 신박한 표현이라 둘이서 깔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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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을 시키고 나왔는데 나무는 금세 잠들었다.
깰 때까지 기다렸다가 깨자마자 카메라를 들이댄다. 찰칵찰칵. 눕혀서 찍고 앉혀서 찍고 인형이랑 찍고. 76일된 나무는 허리랑 목에 힘이 많이 생겨서 소파에 꽤 잘 기대고 있었다. 흑백말고도 색깔이 보이는지 사물을 잘 바라본다. 엄마가 웃으면 꽤 잘 따라 웃기도 하고, 외계어를 연속으로 여러 번 주고받기도 했다. 여전히 머리에 뭘 쓰는 건좋아하지 않는다. 나무 눈치를 보며 몰래 토끼 귀처럼 생긴 모자를 씌웠는데 도치아빠 도치엄마 눈에서 하트가 튀어나온다. 너무너무 귀엽잖아! 오늘도 빠져든다 빠져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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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저녁 메뉴에 들어갈 카레가루를 사러 갔다가 쌈배추와 연근, 무알콜맥주와 과자도 사 왔다. 떡볶이랑 김말이튀김, 어묵튀김과 순대를 동시에 차리는 요리하는 남자. 나는 순대 막장을 만들고 남편은 김말이를 찍어 먹을 겨자소스를 만들었다. 왠지 나무는 우리가 먹을 때 깰 것 같았는데,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영화 ‘라라랜드’를 보면서 맘마를 먹이고, 나무를 재우고, 분식을 먹었다. 오랜만에 보는 라라랜드를 보며 또 생각에 잠긴다. 내가 그때 그 순간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또는 남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해하면서, 그랬다면 ‘이 귀염둥이를 만나지 못했겠지’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운명적인 타이밍은 우리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네. 감사하게도. 진심을 담아서 두 사람에게 뽀뽀를 하고 자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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