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6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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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 금요일,

[하루 늦은 일기]

새벽 맘마는 엄마 담당.

4시 반에 맘마를 다 먹고 까무룩 잠든 나무는 아침까지도 잘 잤다. 등산가시기 전에 내 옆에 나무를 눕히고는 우리 둘 다 쿨쿨쿨. 싱긋 웃는 아기 덕분에 하루 시작이 즐거워졌다. 집에서 편하게 입히라고 사준 옷들은 알록달록. 청록색에 빨간색 땡땡이를 입은 나무는 마치 송충이같았다. 몸까지 구부리고 동그랗게 말은 모습은 공벌레였다. 양말을 벗겼더니 먼지가 한가득 묻어나온다. 세면대에 둥둥 떠다니는 먼지를 보면서 피식. 아가야에게서 의외인 모습들을 발견하면 너무 귀여웠다. 축축하게 젖은 양말과 시콤콤한 냄새, 손가락 발가락 사이에 숨겨둔 먼지, 주루룩 흘러내리는 침 모양도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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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닭죽을 먹고 밖에 나왔다.

얼마 만에 눈썹이랑 아이라인을 하는 건지. 눈썹 끝부분의 색이 흐려져서 재터치를 하고 싶었는데 그땐 임신 중이었으니 기약없이 연기를 했다. 지난 번엔 참을만 했던 아이라인의 배신.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찔끔 나오고 있었다. 다행인지 공포의 눈썹은 꽤 평화롭게 흘러갔다. 앞머리가 있어도 짱구눈썹은 눈에 띄었다. 눈이 퉁퉁부어 집으로 돌아간다. 아유 예뻐지기 힘드네. 무엇보다 작년부터 너무 많이 생긴 흰머리를 보면서 졸종 한숨을 쉬었다. (100개는 되는 것 같다..) 나이가 드는 걸 새삼 실감하면서 ‘염색을 하면 되지!’ 하고 씩씩하게 솔로몬처럼 해결책을 생각하다가도, 노화와 세월에 장사없는 내가 되어버린 것 같아 답답해진다. 살부터 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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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우리집.

다만 집이 따뜻해서 더위를 자주 느꼈다. 하루종일 땀을 흘리는 나, 나무 얼굴에도 뭔가가 올라오는 것 같아서 오늘은 내가 데리고 자기로 했다. 엄마가 재우시다가 10시 쯤 잠든 나무를 내 옆에 눕히셨다. 꿈나라로 떠나면 일기를 쓸랬는데 자꾸만 바둥바둥거리고 깨길래, 새벽에 쓸 생각으로 잠든 우리였다. 새벽 3시엔 맘마먹고 놀고 싶어서 나를 붙잡으면 어떡해.. 결국 일기는 하루를 빼먹고.. 대신 아기의 온기를 오롯이 느끼는 밤을 보낸다. 남편은 퇴근 후에 ‘경이로운 소문’ 드라마에 빠졌고, 나는 서프라이즈로 배달음식을 보내주었다. 행복하게 각자의 금요일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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