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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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 월요일,
너무 피곤했는지 눈 살짝 감았을 뿐인데 금방 아침이 됐다. 남편은 언제 일어났을까. 우리가 8시에 눈을 떴을 땐, 그는 이미 반듯하게 이불 정리를 해놓고 살금살금 빠져나가 출근을 했더라. 어제 잠들기 힘들어했던 나무도 깨지 않고 잘 잤네. 다행이다. 9시간 만에 먹는 맘마 180ml을 게눈 감추듯 비운다. 일어나면 재우고 싶고 자면 깨우고 싶어지네. 뒤집기 좀 쉬엄쉬엄 하면 안 될까 나무야? 오늘 하루가 참 길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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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접종하러 가는 날.
오늘은 나 혼자서 나무를 데리고 병원에 가기로 했다. 남편없이 혼자 하려니 괜히 긴장되네. 날이 더 흐려지기 전에 오전에 다녀와야겠다. 유모차에 태워서 갈 거니깐 이것저것 다 챙겨보자. 혹시 울음이 터지면 안아야 하니까 아기띠 넣고, 기저귀랑 손수건 넣고, 딸랑이랑 장난감 넣고, 비도 온댔으니 우산도 넣고, 어제보다 추우니까 담요랑 외투도 챙기자. ‘나무야 우리 주사 꽁!하러 잘 갔다 오자’하고 말한건 내게 하는 말이었다. 걸어서 10분 거리를 산책하듯 살방살방 걷는다. 나무도 선선한 공기가 좋은지 차분하게 유모차를 타고 있었다. 발 하나를 쭈욱 빼서 손잡이에 턱 걸치고 있는 모습 왜 이리 귀엽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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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몰랐던 5월의 바깥 세계.
맞다, 5월에 장미가 피는 계절이었지. 걷다가 발견한 담장 너머의 장미덩굴들이 우리를 사로 잡는다. 빨갛고 초록인 이 계절이 참 예뻐서, 꽃 앞에 섰다. 아기에게 꽃을 보여주고픈 엄마의 마음. 아카시아꽃 향기를 맡는 날이 오면 또 기분 몽글몽글할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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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는 70cm, 몸무게는 8.6kg.
5개월 만에 키가 17cm 자라고 몸무게는 5kg 넘게 쪘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순간에도 아기는 자라고 있겠지. 매일매일 커서 바라보는 이 세계는 얼마나 흥미롭고 때론 무섭고 신기할까. 오늘은 2차 폐렴구균 주사를 맞았다. 주사실에 들어가서도 모빌을 보면서 생글생글 즐거웠는데 따꼼!하는 주사에 울음을 터뜨린다. 잉잉. 안아주자마자 바로 그치긴 했지만 작고 연약한 피부에 주사가 얼마나 아플지.. 아이참. 6월 말 영유아검진 예약을 해놓고 다시 집으로 가려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잠깐 앉아서 기다리다가 우산을 쓰고 한 손으로 유모차를 밀었다. 엄마가 되고 보니 아기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들의 노고가 대단함을 느낀다. 그리고 하나 더, 바깥 길은 참 울퉁불퉁하고 위험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자동차는 참 많이 지나다니고, 길에서 담배피는 사람도 참 많네. 아유. 돌아오는 길에 곤히 잠든 나무. 우리 둘이서 첫 병원 방문 수고했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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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마자 옷을 갈아입히고 몸을 구석구석 닦아주었다. 접종열이 있나 없나 살펴보는 게 나의 큰 역할. 지난 주부터 너무 먹고 싶었던 맨밥에 김. 어젯밤에 남편한테 소박한 꿈을 얘기했더니 밥을 해놓고, 김도 이쁘게 잘라서 통에 담아놨다. 아기를 안고 있느라 먹기까지 과정은 힘들었지만 너무 맛있어서 한 그릇 반은 먹었네 흐흐. 아기는 잠든 사이 설거지와 젖병 열탕소독, 세탁기를 돌려놓고 옆에 누웠다. 둘이서 새근새근 쿨쿨쿨. 흐린 날과 주사 때문에 3시간을 넘게 자고 일어났네. 잘 잤니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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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한 남편은 씻고 주방으로 들어섰다.
파스타소스를 넣은 비엔나브로콜리버섯볶음, 된장찌개, 물김치랑 밑반찬들로 한 상을 차렸다. 보행기를 핥아 먹는 아기를 옆에 두고 배부르게 먹었네. 침은 줄줄줄. 턱받이가 아기들에게 필수품인 줄 몰랐지 난. 옷에 묻지 않게, 패션의 일부인 줄 알았지.. 이렇게 침을 많이 흘릴 줄 몰랐지. 손수건은 하루에 30개는 쓰는 것 같고, 턱받이는 아껴서 10개.. 턱받이가 다 젖을 줄 몰랐지.. 우리집 침대장 나무는 웬일로 9시 전에 자러 갔다고 하던데.. 이왕 아침까지 자 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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