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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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토요일,
[하루 늦은 일기]
작정하고 마신 밤 커피는 역시 밤을 붙잡는다.
의외로 잘 잘 수 있을 거란 희망은 이제 접을래. 말똥말똥한 나무만 보다가 내가 새벽 4시까지 말똥할 줄 몰랐지.. 말하는 대로 이뤄지는구만 오메. 일기를 쓰기 전에 뭘 그려야할지 몰라서 오랫동안 방황하다가, 다 끝내고 놀다가 시계를 보는 순간 내일을 위해서라도 눈을 붙여야겠다. 골골골. 8시 40분에 깬 아기에게 맘마를 먹었고, 남편은 꼭두새벽부터 목공놀이를 하러 떠났다. 그 열정 아주 대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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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소를 하기엔 내가 몹시 피곤하네.
아기랑 놀다가 자다가 놀다가 자기를 반복하다보니 11시가 넘었다. 다시 쿨쿨쿨. 장을 봐 온 남편은 파 한 단은 손질하기 시작했다. 눈이 매워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눈물의 파티를 벌인다. 두근두근 이유식 2일 차. 보통 두 번째 수유시간에 이유식하는 것을 권장했다. 아기 컨디션이 좋을 시간대, 적당히 배고픈 타이밍에 쇽. 숟가락과 그릇을 보자마자 잽싸게 뺏아가려해서 당황했던 나. 다행히 오늘도 잘 받아먹어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한 숟가락을 뜨고 손바닥으로 식판을 탕탕치는데, 흐름이 끊기지 않게 달라고 하는 무언의 압박같기도? 코로 먹은 것 같지만, 반쯤 흘리고 반쯤 닦아낸 것 같지만.. 어제보다 더 많은 60ml, 분유 160ml을 맛있게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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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버터구이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단짠단짠맛. 그리고 2시쯤 넘어서 시부모님이 집에 오셨다. 그새 더 많이 자란 나무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고도 방긋 잘 웃어서, 하트뿅뿅 눈빛 선물을 받았다. 할머니를 만나는 날이면 ‘안겨있는’ 욕구가 충족되는 날이라고 해야 하나. 보채거나 울 이유도 없이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는 순둥이가 되어 있었다. 그런 나무를 보고 아버님은 늘 말씀하시기를, ‘나무는 안 울고 잘 먹고 잘 놀아서 참 착하다’고. 백신접종 후 간밤에 어머님은 몸살 때문에 밤잠을 설치셨다고 했다. 괜찮아지신 덕분에 나무를 힘껏 계속 안아주셨다. 물론 손자를 향한 사랑의 힘이겠지만. 커피파티, 빵파티, 떡파티를 하고나서 저녁엔 감자탕파티, 수박파티까지 끝내고 가셨다. 배가 꺼질 틈이 없네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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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컨디션 나무.
평소보다 더 많이 웃고 재롱을 더 많이 부렸다. 할아버지를 자주 쳐다보는 모습은 또 왜이리 귀엽니. 늦은 오후, 쪽쪽이 하나가 사라져서 거실을 뒤지고 찾고 난리였던 우리들. 결국 못 찾고 있었는데, 목욕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남편이 신기한 걸 보여주겠단다. 그리 찾아도 없던 쪽쪽이가! 바로 그 쪽쪽이가! 나무의 바지 속, 기저귀 위에 딱 끼여있는 게 아닌가. 니가 왜 거기서 나오냐.. 어이없는 웃음을 빵 터뜨리고는 신나게 물놀이를 하러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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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반이 되기도 전에 곯아 떨어진 아기.
조용해진 우리집, 평화로운 우리집, 여유로운 토요일밤을 보냈다. 모처럼 일찍 자러간다고 기뻐했는데 왜 11시에 깨냐.. 쪽쪽이를 물려줘도 눈은 원래 크기로 돌아왔다. 말똥말똥구리. 눈은 비비면서 하품은 하면서 잠이 들지 않네.. 결국 일기도 뭐고 다 놔두고 나무를 재우는데 집중하기로 한다. 불끄고 누워서도 어찌나 뒤척이는지. 그 밤에 엉덩이를 들고 얼굴로 열심히 밀고 다닌다.. 웃고 소리지르고귀여운 건 다 하네. 어느새 잠들고, 새벽 5시에 나와서 적는 일기. 어젯밤엔 개구리 소리를 들으면서 잠들었는데, 오늘은 새소리를 듣네. 좋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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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에게 우리 두 사람이 골고루 섞여있었다.
얼굴모양과 손톱은 나를, 발가락은 남편을. 이렇게 각각의 부위들을 하나하나 곱게 빚어진 게 신기할 따름. 그 중에서 제일 신기했던 건 머리카락이었다. 위로 뻗치게 자라는 머리카락은 누가봐도 아기 때의 나였다. 왕관앵무새같은 머리 스타일. 그리고 남편의 제비초리를 복사해서 붙여넣은 우리 아기.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 어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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