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3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_

_

6월 3일 목요일,

아기는 잠들고 남편과 나는 거실매트 위에 나란히 누웠다.

우리에게도 둘에게만 집중하던 적이 있었더랬지.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아기는 잘 자다가 우리를 찾았다. 귀염둥이야 갑니다 갑니다. 나도 눕자마자 금세 잠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왼쪽 골반이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리랑 골반을 통통통 두드려도 아파 아파. 낮에 마신 맥심때문인지 잠도 자주 깼다. 무엇보다 골반이 너무 아려서 5시부터 아침까지 뜬 눈으로 지샜다. 남편한테 말하니까 파스 두 개를 꺼내서 붙여준다. 아유 고마워요. 빗길 조심히 운전하라며 인사를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나무야 너라도 잘 자렴.

.

아침부터 하루종일 비가 내린다.

아기는 11시에 깨어나 정말 한 시도 지치지 않고 움직였다. 저 쪼꼬만 아기가 어쩜 저렇게 쉬지 않고 움직이는지.. 대단해 대단해. 큰 매트를 깔았는데 왜 바닥 쪽으로 다니는 걸까. 배를 밀고 다니기 좋은 환경이라 쭉쭉 뻗어 나가네. 잠깐 눈을 돌린 사이에 선풍기 버튼을 만지작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너무 놀랬다. 하루가 다르게 활동반경이 넓어지는 우리 아기. 그만큼 많이 컸다는 거겠지. 아기를 키우는 일이 좋으면서도 지치고 지치지만 좋은 그 기분을 너는 알까.

.

다시 돌아온 목욕시간.

의자에 앉아으면 물 바가지를 잡으려 하질 않나, 탈출하려고 하지 않나, 거품 묻은 손을 입에 넣으려고 하질 않나.. 목욕 만큼은 엄청난 긴장감을 가진 채, 입은 동요를 신나게 부르면서 구석구석 씻겨준다. 물기를 머금은 몸을 수건에 돌돌 감싸서 안을 때면 저절로 하게 되는 궁디팡팡. 거울에 보이는 나무도 개운하고 즐거워 보인다. 귀여워. 과제 하나를 끝내고, 늦은 점심으로 틈틈이 김밥을 입에 쏙 넣었다. 배가 너무 고팠어..

.

원래라면 오전에 먹여야 할 이유식을 오후로 미뤘다.

만들어 둔 쌀미음이 똑 떨어졌고, 오늘부터 새롭게 들어가는 ‘소고기미음’. 3일동안 먹일 소고기양은 30g 밖에 되지 않을 만큼 적다(책은 20g 기준이었지만). 그런데 만드는 과정은 왜 이리 많은가. 핏물 빼고, 소고기를 삶고, 믹서기에 갈고, 다시 소고기랑 육수랑 쌀가루물을 끓인단다. 여기서 끝이 아니네. 채반에 소고기를 걸러주라네. 간단한 듯 간단하지 않구먼. 일부러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놓고 계속 눈을 마주치고 이름 불러주면서 미음을 만들었는데.. 안아주라고 찡찡찡 참다 못한 나무는 얼굴이 터질듯이 울음을 터뜨렸다. 하다가 멈출 수도 없고, 아기는 울고 나혼자 식겁했네.. 얼른 안아주고는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미안해.

.

응가도 했겠다 졸린 나무는 바로 잠이 들었다.

두근두근 이유식 시간. 과연 소고기 미음을 먹어줄 것인가. 능숙하진 않지만 정성을 쏟은 음식이라 내심 기대가 된다. 처음 맛 본 소고기에 눈이 삥글삥글 돌 정도로 맛있지는 않아도 계속 입을 벌렸다. 이 쪼그만 아기가 빨고 삼키는 걸 혼자 터득하다니. 물론 먹이면서 바닥에 질질, 손이며 얼굴이며 발에도 질질 흘려서 치울 게 더 많아졌지만, 준비했던 75g을 다 먹어준 걸로 다 괜찮아졌다. 다시 씻으러 가보자! 그 다음엔 설거지, 열탕소독, 청소기까지 돌리자!

.

출장이 있어 창녕에 다녀온 남편은 집에 오니 8시 반이 넘었다. 아침부터 이 시간도 길게 느껴지는데 독박육아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고되고 지칠까. 통닭을 시켜놓고 나는 스텝퍼 12분을 걸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퀴퀴했던 나에게서 비누향이 풍겼다. 밤 9시에 먹는 양념 통닭과 후라이드 통닭은 기가 막힐 정도로 맛있었다. 나의 육아동지도 왔으니 한 숨 돌리고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 우리 아기는 아직까지 잘 생각이 없고.. 우리는 굉장히 지쳤고..
_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10602 이숭이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