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8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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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 목요일,

졸린데도 나무는 기침 때문에 자주 깼다.

작고 여린 몸이 들썩들썩거릴 때면 나도 같이 아파왔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의 말을 이해할 것 같아. 잠시 깨서 카톡을 보니 다급한 상황이 느껴지는 사진 2장과 문자가 와 있었다. 새벽 4시에 물난리가 난 우리집 이야기를 나중에 들려주겠단다. 어디서 물이 샌 걸까. 주방도구들이 여기저기로 대피해있고 물기를 짜려고 놔둔 통과 수건이 보인다. 오메 뭔 일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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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에 일어나 맘마와 감기약을 먹인다.

나랑은 비교가 안 되게 훨씬 더 거침없는 엄마는 아기에게 재빠르고 노련하게 약을 먹이셨다. 아직 입에 넣지도 않았는데 쓴 표정을 짓고 고개를 돌리는 거 보면 아기도 눈치가 참 빠르다는 거. 할아버지 식사하시는 동안 부지런히도 놀았다. 한 시간을 놀고 우리는 8시 반부터 3시간을 내리 잤다. 둘이서 깨지 않고 맛있게 잘 잤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의자에 앉힌다. 오늘은 어떤 표정과 모습으로 맘마를 먹을지 궁금해지네. 한 입 들어가면 꼴딱꼴딱 삼키고 있어서 주는 나도 바쁘다 바빠. 미음 90ml과 분유 120ml을 먹고 기분 좋아진 나무는 보행기를 타고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트롤리에 있는 손수건이랑 양말을 하나 둘 빼더니.. 난리가 났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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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를 터미널로 배웅해드리고 왔다.

엄마랑 나는 잠깐 콧구멍에 바람 좀 쐬고 와서 집안일을 해나갔다. 장소만 다를 뿐 하는 건 똑같네.청소기돌리기, 걸레로 바닥 닦기, 빨래 개기, 빨래 돌리기와 열탕소독, 젖병에 분유 채우기 등등. 땀이 흐를 대로 흘러서 이제 좀 씻어야 겠다. 귀여운 방해꾼은 내가 씻고 있는 도중에 보행기를 타고 화장실로 슉 들어온다. 계속 보고 있다가, 나무를 발견한 엄마는 후다닥 데려가셨다. 내 프라이버시를 지켜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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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빵을 먹고, 저녁엔 김치랑 후라이랑 같이 밥을 먹었다. 적당히 익은 새김치가 맛있어서 한 그릇을 금방 비운다. 나무는 보행기를 타고 다니며 우리가 먹는 시간을 잘 기다려줬다. 어제부터 계속 앉으려고 무릎을 꿇더니, 몇 십번의 노력 끝에 앉는 법을 터득했다. 혹시나 넘어질까 팔을 뻗어 내게 의지한다. 살살 엉덩이를 움직이고 다리를 빼다가, 어느 순간 스스로 앉을 수 있게 됐다. 중요한 건, 허리를 빳빳하게 세워서 앉을 수 있다는 거. 자기만의 미션을 하나씩 성공할 때마다 잔잔한 미소를 짓는 나무가 보인다. 오늘도 씨익 웃는다. 혼자 균형을 잡으려 집중을 하고는 오래도록 앉아있는다. 어쩜 그래. 안 되면 될 때까지 하는 ‘노력형 나무’에게 또 하나를 배운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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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있는 거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나무는 대왕똥파티를 벌였다. 어제 이틀 만에 눠서 대왕 똥파티를 했는데 오늘은 더 만만치않았다. 먹은 음식을 여기서 실감나게 발견하게 될 줄 몰랐네. 후다닥 닦아주고 목욕을 시키러 간다. 오늘 목표는 잘 때 불을 다 끄고 눕는 걸로. 9시 반에 재우고 몰래 빠져 나와서 일기를 쓴다.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깬 나무는 울다가 맘마 60ml을 먹고 잠들었다. 코가 막혀서 숨을 제대로 못 쉬는 모습이 너무 짠하다..오늘밤은 특별히 거실에서 외할머니랑 엄마랑 셋이서 자자.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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