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우리앞에서 지나간다.
운이 시기가 맞든 / 돈을 벌어다주든/ 사람을 앉혀다 주든 쉬운 결정으로 이루어지진 않는다. 그 시대와 상황을 거스르는 결정속에서 운은 다가온다.
나는 40에 인생이 꽃이 피는 줄 알았다. 40 에 나에게 온 손님은 당뇨였다. 젊은 날 당뇨에 걸려 다리를 자르고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한 예를 지켜보아온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처음 복용한 약의 후유증으로 설사속에서 순식간에 10여킬로가 빠지고 온몸의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는 느낌을 가진 그래서 이대로 죽는가보다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40이 되었을 때 간경화로 보낸 나는 “ 나도 병으로 죽나 “ 를 공포속에서 느낀 시간을 보낸다.
젊은 아내와 어린 세 아들들을 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와 남겨진 엄마와 우리 3남매의 힘겹고 고단한 삶이 오버랩되면서 간절히 기도한다. “ 세 아들들이 자라가는것을 지켜만 보는 삶을 사는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고 살고 싶습니다. “
당뇨는 잘 조절하면 되는 병이다. 하지만 마음이 무너진 힘든 시기에 내린 삶의 결정들은 지난 20년동안 내 삶에 큰 후유증을 남기고 40대와 50대를 제대로 가꾸거나 일구지 못한채 보낸다. 하지만 나는 세 아들들이 성인으로 커 나가면서 자신의 삶을 일구어가는 시간들을 지켜보는 행운을 누렸다. 세 아들들의 희노애락을 지켜보았고 지금도 보는 중이다. 그래서 내 삶은 행운이고 감사하고 아내와 아들들이 고맙다.
일찍 잠시나마 죽음이라는 시간앞에서서 내 삶을 보았기에 그나마 나는 삶에 대해/ 사람에 대해/ 인생에 대해/ 지금 살아 있음에 대해 감사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그러기에 지금의 나는 그 시간을 운이 지나가면서 머물러준 시간으로 받아들인다. 그 시간이 씨앗이 되어 자라 아들들의 삶에서 꽃피는것을 지켜보는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