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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zard Writer Oct 10. 2023

#2. 뜻밖의 우연이 나를 돕는다?

취미, Artist Child in Hawaii, 2/12

‘너 달라졌다’, ‘넌 이기주의자야’. 내 목소리를 내고 나를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나도 이런 말을 들었다. ‘말도 잘 듣고, 안 그랬는데 왜 그러냐?’ 엄마와 동생의 말이니 사실일까. 물론 내가 다 잘했다는 건 아니다. 분명 내가 이기적인 부분도 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삶을 살겠다는 것이 가족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어느 정신과 의사의 강연에서 들은 대로  ‘피부 경계선’을 주장했다. 자기 피부를 기준으로 피부 안은 임의대로 할 수 있지만 피부 바깥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타인의 영역이라는 것. 그러나 우리 가족은 ‘우리가 가족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그럴 수 없고, 그렇게 하는 것은 이기주의라고 말했다. 서양인인 마냥 개인주의자인 나는 전형적인 한국인 가족에게 이기주의자로 비칠 뿐이다.


캐머런은 내가 가족에게 들은 그런 말이 경고등이라고 한다. 나의 편안함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편안함을 위해 살던 과거의 방식에 붙잡아 두려는 유혹. 생명을 다투는 위급한 일이 아니면 나는 가능한 다른 사람에게 맞춰주려고 하는 편이다. 그런 기조대로 라면 가족과도 사이좋게 잘 지낼 수 있다. 문제는 가족이 아무리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도, 그 저변에 나의 편안함이 아니라 그들의 편안함이 근본적으로 깔려 있어서 결국 내가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런 일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청소도 귀찮고 답답한 것이 싫어서 집에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달지 않는 것. 요즘같이 무시무시한 세상에 혼자 살면서 겁도 없다, 너희 집에는 자고 일어나면 눈이 부셔서 가기 싫다는 둥 온갖 원성을 들었다.


아무튼 가족과 티격태격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고, 웬만하면 맞춰주자는 나의 기조를 따라 블라인드를 달았다. 내가 하와이에 있는 동안 가끔 가족들이 집을 봐주러 오면 커튼이 없다고 불편해할 테니까. 그런데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나에게는 전혀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만, 앞뒤 베란다에 우드색 블라인드가 깔리자 더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커튼을 좋아하지 않는다, 커튼보다는 블라인드가 좋다는 등의 취향은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커튼은 절대 달지 않겠어!’라는 식으로 독립운동하듯이 내 취향에 신념을 바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캐머런은 신념을 바꾸지 않더라도 마음은 열어두는 것이 창조적인 회복에도 중요하다고 한다. 내가 옳다고 믿고 좋다고 고집하고 있는 것을 굳이 바꿀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그 신념을 재검토할 수 있을 정도의 유연성은 필요하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이 과연 옳을까? 내가 좋다고 고집하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일까? 나는 왜 그렇게 고집할까? 어떤 것을 고집한다는 것은 딱딱하다는 것인데, 생각이며 몸이며 마음이며 딱딱해서 좋은 것은 별로 없다. 특히 우리 내면에 꽈리를 틀고 자리한 굳은 생각과 확고한 의심을 살살 달래서 좀 부드럽게 풀어놓으면 어떨까?


많은 경우, 우리의 창조성을 가로막는 내면의 적은 가까운 사람의 평가, 그리고 그로 인한 자신의 의구심이다. 옛날에 사귀었던 어떤 남자친구는 어느 날 나에게 ‘넌 음악은 잘할 거 같은데 미술은 아닌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그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하기는 했지만, 그 말에 붙들려 평생 미술을 멀리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잘 계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은 노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잘은 모르지만 미술관 구경을 즐겼고 친구가 하는 미술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어느새 지금은 틈이 나면 혼자서 그림을 그리고 미술 워크숍이 보이면 등록한다. 누가 들으면 그림을 잘 그리나 보다고 하겠지만 나에게는 미술치료 수준이다.




하와이에서는 매월 셋째 일요일에 호놀룰루 미술관(Honolulu Museum of Art: HoMA)에 가려고 한다. 이날은 입장이 무료인데 여러 작은 정원과 함께 미로처럼 설계된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설렌다. 처음 두 번은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지만, 이제는 곧장 모네의 '수련' 앞으로 간다. 소파에 앉아 그 그림을 보고 시간을 보내면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다. 만약, ‘미술은 아닌 것 같아’라는 다른 사람의 평가, 그로 인한 내면의 목소리에 익숙해져서 미술에 대해 마음을 열지 않았다면 누리지 못했을 소중한 경험이다.


이렇게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은 뜻밖의 우연이다. 친한 친구가 미술학원을 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굳이 그림 그릴 생각을 했을까. 그 친구와는 비올라도 함께 배웠다. 나는 어렸을 때 배웠던 바이올린을 다시 하고 싶었는데 그 무렵 친구가 비올라에 꽂혀 있었고 바이올린이나 비올라나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에 함께하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비올라의 활은 바이올린 활보다 훨씬 무거워서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악보도 흔히 보는 높은음자리표가 아니라 가온음자리표를 사용하기 때문에 머리와 손이 따로 놀았다. 후회했지만 이미 악기는 샀고 성격상 시작한 것을 포기하지는 못했다. 아직도 연주를 잘하지 못하지만-친구 결혼 축가 반주를 제안받았는데 아빠가 들어보시더니 남의 결혼식 망치지 말라고 하셨다- 진하고 풍부하면서 화음에 훌륭한 비올라의 알토 음색은 좋아하게 됐다.




하와이에서도 뜻밖의 우연이 내 안의 아티스트 차일드(Artist Child)를 돕는다. 훌라를 배우고 싶었지만, 배울 곳을 찾기 힘들었다. 하와이 훌라 수업은 쿠무(kumu, 스승)가 모집한 학생 중에 누군가 그만두면 그 자리를 채우는 폐쇄적인 형식이다. 그런데 우연히 개방적인 훌라 교실을 발견했다. 내가 다니는 현지 교회는 Waikiki Community Center의 건물을 빌려서 예배를 드리는데 게시판에 훌라 교실이 떡하니 붙어 있는 것이다. 자격 조건을 묻지 않고 당일에 와서 1일 수업료를 내고 자유롭게 참여하는 방식이라 마음 내킬 때 편하게 즐길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이곳에서 만난 친구 S는 10년 전에 하와이로 유학하러 왔다가 이번에 일하러 다시 왔는데 한국에서도 훌라를 배웠다고 한다. 그 친구는 자기 기억에 하와이대학교가 저렴하게 제공하는 다이빙, 세일링, 서핑 등 야외수업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찾아가 세일링, 하이킹, 카약, SUP까지 하고 싶은 거의 모든 활동에 등록했다. 그뿐인가. 한 달간 나와 사무실을 같이 쓴 분은 알래스카에서 오신 분이다. 하와이에 있는 동안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곳이 알래스카인데 여행을 원하면 정보를 보내주겠다고 하셨다. 그저 우연으로 넘길 수도 있지만 생각하거나 필요로 하는 그 무언가가 어쩌면 그리도 곳곳에서 불쑥불쑥 나타나는지!




이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김창옥 강사님 강의를 즐겨 듣다 보니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것도 들어보라’며 김미경 강사님의 영상을 제안했다. 최신 강의인 ‘마흔 수업’을 듣고 책으로 읽고 싶어졌다. 마흔 이후의 삶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라는 메시지에 도전받고 책에서 나온 514(한 달에 14일간 새벽 5시 기상) 운동을 따라 굿짹 칼리지라는 홈페이지에 갔다. 거기서 마침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읽고 12주간 에세이를 쓰는 모임을 만났다. 몇 번의 에세이가 모이면 ‘브런치스토리’ 작가도 신청해 볼 생각이다. 은퇴하면 작가를 해야지, 언젠가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생각이 뜻밖의 우연에 힘입어 차근차근 전개되고 있다.


나는 성경에서 에스더와 룻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에스더서에는 신의 이름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지만, 신의 손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우연이 계속된다. 룻기에는 ‘마침’이라는 식으로 우연에 우연이 겹치고 또 겹쳐서 악재가 행운이 되고 한 가족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간다. 우리 각자의 삶이라고 다를까. 차이가 있다면 그 우연을 보는 눈에 달렸다. 캐머런은 인생의 진실이 성공과 실패에 있지 않고 삶의 질은 기뻐하는 능력에 비례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뻐하는 능력이란 관심을 두고 주의를 기울이는 재능이라고 말한다. 오늘 하루 내 삶에 일어나고 있는 우연에 관심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일수록 나는 더 기뻐할 수 있고 그것이 오늘 내 삶의 질을 결정할 것이다.




이 글은 줄리아 캐머런의 '아티스트 웨이'를 읽으면서 12개 챕터마다 와 닿은 문구에 하와이의 일상과 나 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을 엮은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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