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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zard Writer Oct 10. 2023

#3. 안전한 부화장을 찾습니다.

감정, Artist Child in Hawaii 3/12

인사이드아웃(Inside Out)은 2015년에 개봉된 픽사의 애니메이션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고 감탄해 마지않은 작품 중 하나다. 기쁨(Joy), 슬픔(Sadness), 버럭(Anger), 소심(Fear), 까칠(Disgust)이라는 인간 내면의 다섯 가지 감정을 의인화했는데, 이들 중 감정 본부(Emotion’s Headquarters)의 제어판을 누가 잡는가에 따라 열한 살 주인공 라일리의 행동이 급변한다. 나는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내 안에 일어나는 감정을 훨씬 더 잘 이해하게 됐다. 


같이 영화를 본 친구가 내 머릿속에는 저 다섯 중 누가 가장 많이 제어판을 잡는지 물었다. 나는 영화에서처럼 당연히 ‘기쁨’이라고 했다. 그래서 더 영화가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내 말을 들은 친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는 아니라고 했다. 그때 비로소 나는 사람들이 다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이 영화에서 기쁨이 다음으로 주요 역할을 한 것은 슬픔인데, 아, 무기력에 절어 있는 이 슬픔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약간 짜증이 났다. 하지만, 영화에서 슬픔이가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바람에 슬픔을 부정적으로 보던 생각이 바뀌었다. 영화 줄거리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생략. 




슬픔과 더불어 내가 죄악시하던 또 하나의 감정은 바로 버럭이, 분노다. 나는 어릴 때 허약하고 머리가 자주 아파서 짜증을 잘 냈다. 지금 돌아보면 예민한 아이였나 보다. 그런가 하면 다혈질까지 있는데 그런 내가 참고, 참고 또 참는 K-장녀로 자랐다. 그러니 내 전두엽에서 기쁨이가 지휘봉을 잡고 잘 제어하다가 참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버럭이가 튀어나와 주위를 초토화했다. 최대한 참는 만큼 드문 일이긴 했지만, 화를 잘 참지 못한다는 콤플렉스를 갖고 살았다.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은 더 이상 그런 감정의 화산 폭발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내가 열받는 만큼 나도 다른 사람을 어지간히 열받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회생활을 통해 알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분노의 화산을 폭발시키지 않고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더 나아가 우아하게 표출할 수도 있다는 것. 미리 경고할 수도 있고, 어쩔 수 없이 몸속의 가스를 남몰래 내뿜을 때처럼 아주 조금씩 배출하는 등 단계와 방법은 다양하다. 




캐머런은 적절히 사용하기만 하면 분노는 유용하다고 말한다. 무관심이나 절망과 같이 멀리해야 할 적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서 신호를 보내는 좋은 친구라는 것. 물론 그다지 훌륭하고 친절하지는 않지만, 충성스러운 친구인 것은 분명하다. 뭔가 내 이익에 손해가 올 때 적극 나서며 나를 절대 배반하지 않으니. 다만, 분노는 그 자체가 어떤 행동이라기 보다 다른 행동을 유발하는 초대장일 뿐이다. 어떤 초대장을 보낼지는 내가 선택해야 하고. 그동안 나는 꾹꾹 참다가 거친 응징의 초대장을 남발했다면 이제는 미리 조금씩 무엇을 초대할지 어떻게 초대할지 준비하게 됐다고나 할까. 


이렇게 분노의 초대장을 미리 작성해 두려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혼자만의 시간이. 쉴 새 없이 몸과 머리가 움직이는 바쁜 현대인의 삶에서 단 30분 만이라도 잠잠히 가만히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하와이에 올 때 본인이 악필이라 스스로 쓴 글도 못 읽는다며 손 편지는 되도록 자제하는 선배가 타자한 편지와 달러를 선물로 주셨다. 1년간 하와이에서 지킬 사항이 적혀 있었다. 첫째, 일주일에 한 번씩 멍 때리기. 둘째, 멍 때릴 때 멍 때리는 방법 생각하지 않기. 셋째, 멍 때리고 나서 멍 잘 때렸나 고민하지 않기. 나를 너무나 잘 아시는 그분의 재치 있는 조언이 뼈를 때렸다. 그렇다. 나는 멍 때릴 때도 방법을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멍을 잘 때릴지 고민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내가 하와이 온 지 6개월이 다 되어 가는 지금에서야 그 물이 좀 빠지나 싶다. 언젠가부터 몇 시에 자든지 6시 20분이 조금 넘어 눈이 떠진다. 처음에는 어찌나 잠이 많이 오던지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알람도 없이 6시 24분 전후면 잠에서 깬다. 알람 없는 삶. 꿈만 같다. 어느 날 창밖을 보니 어슴푸레한 아침 하늘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그 신선한 공기를 마시러 나가고 싶어졌다. 그렇게 이른 아침, 혹은 누군가에게는 새벽의 산책이 시작됐다. 대여섯 시라고 하면 한국에는 겨울도 있으니까 캄캄한 새벽이 연상되는데, 하와이는 해가 일찍 뜨는 여름이 연중 계속되니 새벽이라고 하기는 조금 민망하다. 연중 여름이라도 일출과 일몰 시각이 1시간 내에서 바뀌기는 한다. 일출은 9월에 6시 18분, 10월은 6시 27분, 지금이 10월 초순이니 사실 해가 뜰 무렵 눈이 떠지는 것이었다. 


이 아침 산책에는 집 열쇠와 카메라만 들고나간다. 핸드폰은 금물. 혹 너무 아름다운 광경을 놓치면 아쉽기도 하고 아침 산책을 기록하고 싶어 카메라는 소지하지만, 핸드폰으로 이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 나라는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데, 정말 무계획으로 무작정 걷는다. 시간도 갈 곳도 정하지 않고. 건물을 나서서 하늘이 더 예쁜 곳으로 향한다. 5분이면 와이키키 해변이다. 때로 30분, 때로는 50분도 걸린다. 걷는 동안 완연한 아침이 되면 신선한 공기는 사라지고 만다. 그게 아쉬워 30분 더 일찍 나올까, 하고 기상 시간을 앞당길 생각까지 한다. 


미라클 모닝이라며 한국에서는 새벽 기상이 유행처럼 번졌다. 잠이 하루의 컨디션을 좌우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사실은 하고 싶지 않지만 뭔가 따라 해야 할 것 같은 새벽 기상과, 자연의 흐름에 따라 몸이 저절로 깨어나는 새벽 기상은 다르다. 감사하게도 후자를 경험하고 나니 한국에 가서도 전자가 될 뻔한 새벽 기상이 스스로 하고 싶어졌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나에게 어떤 압박도 없고 안전하다는 느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안전하다는 느낌은 나를 표현하는 데도 중요하다. 내면의 강력한 동기에 의해 창조한 글이나 그림은 시끄러운 알람 같은 날카로운 비평이 아니라 대자연의 어머니와 같은 품이 필요하다. 이제 자라나는 새싹에게 잘 자라도록 응원하며 햇빛과 물을 주는 양육의 품 말이다. 내게도 이런 친구들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이해, 공감, 지지. 판단이나 비판은 없다. 요청하지 않은 충고도 없다. (조언을 위장하여 간섭을 일삼는 자에게 내가 말했다. 내가 요청하면 조언이고, 요청하지 않으면 간섭이라고!) 나에게 햇살같은 친구들은 어떤 일이든 내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리라 믿어 주는 신뢰, 내 편에서의 상황 판단이 있을 뿐이다. 나의 글과 그림을 제일 먼저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면 당연히 이들에게 달려갈 것이다. 캐머런은 이것을 두고 예술에는 안전한 부화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 친구들은 바로 이 부화장이다.


성장을 그래프로 나타내면 늘 수직으로 상승하는 곡선이나 직선이 아니라 계단식 혹은 지그재그를 그린다고 한다. 계단에서 정체해 있을 때 혹은 지그재그로 뒷걸음질 칠 때를 버티는 힘은 새벽 산책과 같은 혼자만의 시간, 즉 자기 양육, 그리고 부화장과 같은 사람의 양육이다. 마라톤은 10마일을 천천히 달리다가 1마일을 전력 질주한다. 이때 천천히 달리는 10마일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 시간 동안 분노의 초대장도 준비하고 예술 작품도 부화장에 공개하는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안전한 부화장이 되기를. 하와이에 있는 동안 그런 부화장의 마음을 더 키워가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멍 때리러 나가야겠다.



이 글은 줄리아 캐머런의 '아티스트 웨이'를 읽으면서 12개 챕터마다 와 닿은 문구에 하와이의 일상과 나 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을 엮은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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