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Artist Child in Hawaii 1/12
한국에서도 언젠가부터 연예인들을 아티스트로 부르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를 아티스트라고 하면 어쩐지 유명하고 적어도 남다른 사람이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다 ‘남다르다’. 아무도 같은 사람은 없으니까 남과 다르고, 서로 다르다. 아티스트 웨이(Artist’s Way)라는 책에서 줄리아 캐머런(Julia Cameron)은 우리 내면에 아티스트가 살고 있고 그 아티스트는 어린아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친구가 한 말 때문이다.
아이들이 미술학원에 오면 놀라울 정도로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내는데 그런 자유로운 발상이 아주 어린아이에게서 나타난다는 것. 어느 정도 자란 상태에서 미술을 시작하면 이미 생각이 굳어져 버려 기상천외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 슬프게도 그 기점은 일곱 살 경이라고 했다. 나는 사람을 나무 작대기처럼 그려서 열한 살쯤 엄마가 미술학원에 보낸 아이다. 그래서 내 안에서 꽃 피우지 못한 어린아이, 내면의 아티스트에 대해 애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거기에 대한 보상심리인지 내 로망은 언제나 마법사였다. 나에게 마법이란 현실을 초월하는 자유이기 때문이다. 해리포터에서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헤르미온느, 겨울왕국에서 얼음 장풍을 쏜 다음에 자기 손에서 나온 얼음을 밟고 듬성듬성 뛰어올라 어디로든 달려가는 엘사를 사랑했다. 그러고 보니 다 아이들이다. 마블 스튜디오 중에는 스파이더맨을 가장 사랑하는데, 그도 마블 영웅치고 어린 편이다. 게다가 거미줄로 공중 부양을 하니까… 나는 마법이 좋은 게 아니라 하늘을 날고 싶은 걸까. 그런가 하면 엑스맨도 사랑하는데 일종의 돌연변이라는 점에서 스파이더맨과 같은 계열이다.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마법 혹은 그 비슷한 것을 사용하는 인물에게는 환희가 있고 재미가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예술의 기본이고 본질이다. 예술은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니까.
그러면 아티스트로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누는 건 대체 뭘까. 캐머런은 종종 누군가를 아티스트로 만드는 것이 재능이 아니라 대담함(audacity)이라고 말한다. 솔직, 진솔, 정직 이런 것보다 조금 더 당찬 것이 대담함이다. 솔직하고 진솔하고 정직하게 무언가를 대놓고 표현할 수 있고 입 밖에 꺼낼 수 있는 자세와 태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과 교육 문화는 잠재력 있는 많은 아티스트를 그림자로 살게 하는 건 아닐까. 나 역시 그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캐머런이 말하는 내면의 어린아이, 나의 아티스트를 기죽인 사람 중 하나는 선생님, 내 나이 스물두 살 때 만난 지도교수님이다. 형편상 학비를 제때 내지 못하는 나를 교수님이 밖에서 따로 만나 저녁을 사주신 적이 있다. 내 형편을 들으신 후 돈을 벌 수 있는 번역 초벌 기회를 주셨고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번역 작업을 꽤나 했다. 또 교수님은 인생에서 돈 문제는 돈이 생기면 해결되는 가장 쉬운 문제라며 건강이야말로, 그것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어찌할 수 없는 문제이니 너무 낙심하지 말라고 하셨다.
문제는 이렇게 실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주신 교수님께서 이 대화를 푸는 과정에서 하신 한 마디가 이후 십 년 정도 나를 쫓아다닌 것이다. 교수님은 내가 ‘무색무취’하다며 개성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교수님은 소위 말해 통통 튀는 스타일에 인사관리 전문가로 활동하는 분이었고 당시 나는 이제 겨우 세상에 나와서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인지’ 탐색해 가는 과정이었다. 더군다나 학비 문제로 위축된 상황에서 ‘나는 이런 사람이오’하고 나를 어필할 처지도 아니었다. 나를 아주 재미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그 딱지를 떼어내고 나 자신의 색깔과 향기에 자신감을 갖기까지 십 년은 걸린 것 같다. 겉모습만 보고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하고 조심해야 할 일인지……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은 하와이에 와서 절실히 느끼고 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인종이 뒤섞여 혼혈이 많기 때문에 겉모습만 보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일본인이야 워낙 하와이를 좋아하고 주류를 이루어 왔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한국 혈통도 자주 만난다. 하와이서 알게 된 미국인 목사님이 나랑 성이 같다고 먼 친척이 아니냐며 한국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그녀는 한국 국적이지만 한국말을 전혀 구사하지 않고 미국인 남편을 만나 미국 시민이 되려고 준비 중인 재일교포이다. 일본식 꽃꽂이인 이케바나 교실의 선생님은 세 살 때 일본으로 가족과 이민했다가 다시 하와이로 이민을 와서 살고 있는데 본인이 밝히지 않으면 영락없이 일본 혈통으로 보이는 재일동포이다. 와이키키 동쪽에서 처음으로 바디보드를 타던 날 만난 개릭은 하와이 원주민처럼 보였는데 알고 보니 할머니가 한국 사람이라 사분의 일은 한국인이다. 외모만 보고 어느 나라 사람이겠지, 어느 나라 말을 해야지 하고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하와이의 생활이다. 다들 엇비슷해 보이는 한국 사회에서 눈으로 판단하는 일에 익숙한 나로서는 생경하다.
아무튼, 아티스트 이야기로 돌아와서, 내 안의 아이가 잠들기 전에 처음 숨통을 틔워준 분도 선생님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매월 일기상을 뽑았는데 3월에, 그러니까 첫 번째로 내가 일기상을 받았다. 선생님은 내가 우리 반에서 일기를 가장 잘 쓴다고 칭찬하셨다. 그런 칭찬은 처음이어서 어리둥절했지만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가 하면 음악 시간에 가창 시험을 친 적도 있는데 곡명은 ‘늴리리야’였고 한 구절이 아직도 생각난다. “목~동~이~ 소~~ 몰~고~ 밭둑길로~간~다~ 늴~~~ 늴~리~리~늴~리~리~야~” 엑스, 세모, 동그라미, 그중 동그라미가 최고 점수라고 하셨는데 선생님은 내 노래가 끝나자마자 “동그라미 두 개!”라고 소리치셨다. 그 해 나는 졸지에 글도 잘 쓰고 노래도 잘하는 아이가 되었다. 하지만 무엇이 내 일기를 그렇게 특별하게 만드는지 내가 대관절 무슨 노래를 잘하는지는 설명해주지 않으셨고 나도 굳이 묻지 않았다.
몇십 년 후에 이사하면서 책 정리를 하다가 그 시절 내 일기를 읽고 비로소 그 연유를 알았다. 내 일기는 숙제 제출용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내 안의 생각과 내 주변에 일어난 일이 가감 없이 적혀 있었다. 예를 들면, ‘외할머니가 반대해서 외삼촌이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라는 둥 집안 대소사가 시시콜콜 나와 있었다. 선생님이 읽을 것을 뻔히 알면서 일기를 어떻게 그렇게 쓸 수 있는지 솔직하다 못해 대담했다. 심지어 일반적인 서술식이 아니라 내면의 혼잣말이나 대화체까지 섞여 있었다. 내 목덜미가 보드랍다고 짝꿍이 자꾸 만지려고 장난치는 걸 거부했는데 짝꿍에게 잘못하는 바람에 ‘일주일간 목을 내주기로 해서 골치가 아프다, 휴’, 동생과 싸우고 나서 화가 안 풀려 일기 마무리에 ‘돼지야, 메롱~’을 남기는 그런 식이었다. 일기를 읽다가 혼자 깔깔대며 웃었다. 일기는 누군가를 의식하고 보란 듯이 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을 비추는 거울인데 내 일기가 딱 그러했다.
그러고 보면 노래도 이해가 간다. 나는 노래를 잘 부르는 편은 아니지만 감성적이고 감정 몰입을 잘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 흥얼댈 수 있는 그 ‘목동이 소 몰고 밭둑길로 가는’ 하이라이트를 절절하게 꺾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내 감성을 읽어주는 분이셨고. 캐머런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 선생님의 칭찬이 생각났다. 그렇구나! 내 안의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든 것이구나, 그 아이가 아직 살아 있다니! 이건 나에게 복음(good news)에 가까운 충격적인 소식이다. 그래서 나는 늘 나의 로망이었던 마법을 하와이에서 마음껏 꺼내어 펼쳐보려고 한다. 예술의 본질인 마법, 그 자유, 환희와 재미를. 나의 마법은 글일 수도, 수채화 같은 그림이나 훌라 같은 춤, 우쿨렐레 같은 악기 연주일 수도 있다. 세일링(sailing)이나 바디보딩(bodyboarding)일 수도 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대담함이다. 내 안에 잠든 아이가 아직 일곱 살이 안 되었기를.
이 글은 줄리아 캐머런의 '아티스트 웨이'를 읽으면서 12개 챕터마다 와 닿은 문구에 하와이의 일상과 나 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을 엮은 시리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