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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희 Jun 16. 2024

환상을 맛볼 자격

요리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삶에서 나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이 가장 없는 거 같다는 생각. 사회적 동물로서 주어진 책임, 누군가와의 약속 즉, 나 아닌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가할 수 있는 책임에 대해서는 철저히 지켜내려고 노력하지만, 스스로의 계획, 스스로와의 약속 같은 건 쉽게 간과해 버리는 게 일상이다. 스스로가 용서해 주면 그만이니까. 또 용서해 줄 것을 아니까. 내일로 미룬 청소는 쉽게 또 다음으로 미루고, 당장 큰일이 나지 않는 자기 계발 같은 일들도 마음만 자주 먹기 일 수다. 사소한 일상에 부지런을 떨기가 쉽지 않다. 당장 급한 일들에 에너지 쏟기 바쁠 뿐, 작고 사소한 것에 대한 마음은 다짐의 무게에 비해 깃털만큼 가볍게 날려버리고 만다. 실은 그 디테일이 나를 더 양질의 세상으로 이끌어갈 테지만 말이다.



   오늘도 스스로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일에 대해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잘해보리라 오랜만에 식자재를 한가득 쌓아두었지만 막상 오늘이 오니 귀찮아진 거다. 최대한 간편하게 3분 요리 같은 그 어떤 걸로 배를 채워내고 싶은 욕구, 이는 그 메뉴가 당겼다기보다 머릿속에 지레 그려지는 요리과정에 대한 공포이자 갈등이었다. 또 막상 그 요리들이 엄청나게 먹고 싶지는 않다는 것도 한 몫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재료들을 사서 신뢰가 가는 음식을 먹은 지가 언제였던가. 게다가 오늘 해 먹지 않으면 저 재료들이 언제까지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인 걸. 알찬 음식을 선사하겠다는 어제의 다짐, 그에 대한 책임감이 한없이 가벼워지는 순간이었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가지는 환상 중 하나가 스스로 하는 요리가 아닐까. 먹고 싶은 음식을 뚝딱 만들어 내는 일, 어쩌면 어린 나이에는 쉽게 또 자유롭게 허용되는 일이 아니라 그런 걸 지도 모른다. 칼, 불, 기름 그리고 예민하게 관리되어야 하는 식재료까지. 가까이 있지만 가까이할 수 없는 그 세계를 스스로 컨트롤하는 상상 만으로도 즐겁고 멋진 일이었다. 그래서인가 환상 속 자취는 요리와 한 세트로 묶이 곤 한다. 그게 생각보다 더, 한참, 비현실이지만 말이다.



   자취를 하는 순간 깨달았다. 요리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에 대하여. 얼마나 공이 들어가는지에 대하여. 또 그러므로 깨달았다. 음식대접이라는 게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가에 대하여 말이다. 나 하나 잘 먹자고 음식을 만들기에는 들여야 할 에너지가 생각보다 거대하고, 그에 반해 먹는 건 정말 한 순간이다. 게다가 덩그러니 남는 건 엉망이 된 부엌과 설거지거리, 그 또한 오로지 내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이 맛있었냐 하면... 그것 참 애매했던 맛까지, 거기까지가 자취 요리의 현실이다. 요리 유튜브는 뚝딱 손쉽게 해내며 간편한 것처럼 설명하지만 막상 실전에 들어가 보면 불조절이며 양조절이며 스스로가 고군분투 끝에 깨우쳐야 할 감각들 투성이다. 하지만 그걸 해 내야만 어설프게라도 먹을 만한 게 나오는데 그게 얼마나 민감하고 섬세한 작업인지 모른다. 그러니 나는 꾸역꾸역 먹더라도 손님을 불러 대접할 일은 아닌 거다. 요리를 시도할수록 그리고 먹을수록 우리 집에서 여는 성대한 파티 같은 건 환상 속에 고이 간직하기로 한다.



   음식 대접이란 건 어떤 마음일까 생각한다. 나 하나 대접하기도 결심에 결심에 결심을 거듭해야 하는데 음식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기꺼이 나누겠다는 마음, 그건 요리 실력에 대한 자신감과는 다른 이야기가 아닐까. 자취를 한 후, 음식이야 말로 마음이 없다면 할 수 없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말 한마디, 찰나의 친절도 마음만 먹으면 마음에 없더라도 그럴싸한 마음을 표출해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음식이란 건 메뉴 선정부터 그 사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한 상 멋들어지게 차려내기 위해선 그 한 끼를 위해 하루를 다 써야 할지도 모른다. 요리가 되는 동안도 마찬가지다. 맛있게 잘 되길 조마조마하게 마음을 쓰는 일도 상대를 위해 오로지 맞춰질 테고, 상대의 입속에 메뉴가 들어가는 동안 역시 시선과 마음은 상대에게 온전히 쏟길 테다. 이 마음은 어떤 계산법으로 환산할 수 있을지 감히 마음이 아니고서는 환산되지 않는 게 아닌가.   



   음식이란 게 그런 거 같다. 사람을 모이게 하고 대화하게 하고 또 그 과정에서 마음을 나누게 하는 것. 집에 손님을 초대하고 음식을 대접하면서 상대에게 마음을 선물하는 것. 언젠가 그게 단지 요리에 관심 있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친목도모의 기회라고, 요리 실력이 모나지 않아서 할 수 있는 행위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능력을 부여받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삶, 왁자지껄함과 따뜻함, 그 낭만, 그 분위기. 나는 누릴 수 없는 그들의 그 어떤 삶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건 그들에게 허락된 능력이나 삶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깊이 끌어 내 온 따뜻함이었다는 걸, 환상을 삶에 끌어들이기 위해 내가 쓰지 못한 마음을 그들은 마음을 다해 애써냈을 거라는 걸 이젠 추측할 수 있다. 가장 먼저 스스로를 아끼는 마음과 그 못지않게 맞닿은 인연에 대한 관심과 마음, 그 조합이 동시에 이뤄져 현실이 환상이 되는 순간. 즐거운 사람들과 멋들어진 한상, 환상을 맛볼 자격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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