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
애써 살아온 삶이 무너졌을 때는 애써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을 응원한다. 미래가 막막하게 느껴지거나 희망이 없어 보일 때는 막막함을 묵묵히 걸어가는 누군가에게 희망의 말을 불어넣는다.
열심히 꾸준히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가는 사람에게는 마음이 쓰인다. 때때로 그런 사람들을 떠올리며 마음으로 응원한다. 그들에게는 어떤 시기와 질투도 불러 올 수가 없다. 마음을 다해 열심히 목표를 사랑하며 가는 사람에게는 결과가 따라온다는 진리가 통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마음과 시간들을 감히 어떻게 질투할 수 있을까. 단지 그들이 기어코 얻어낸 결과를 보며 세상의 희망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사람들이 잘 돼야 이 세상을 그나마 사랑할 수도 살아 볼 수 있지 않을까.
마음속에는 순도 100%로 응원하는 사람이 몇 명 존재한다. 무뚝뚝한 성격에 매번 다 말할 수 도 없는 노릇이기에 표현을 잘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주 가끔 댓글 같이 스쳐 지나치는 곳에 그 마음을 넌지시 남기곤 한다. 그날도 오랜만에 꾸준하고 성실하게 꿈을 키우는 그에게 댓글을 남겼다. 잘 되기를 응원한다는 마음을 꼭꼭 담은 댓글이었다. 그가 올린 내용이 하필 자신의 목표에 대한 불안과 희망 그리고 의지였기에 그 마음이 더 담기기도 했다. 그는 그런 내 댓글에 늘 자신을 응원해 주어 고맙다는 마음을 표현했다. 그 응원에 힘입어 지치지 말고 계속 나아가 주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의 목표가 꼭 좋은 결과에 다 닿기를...
마음이 내 추측만큼 잘 전달이 되었다면 그는 나에게 진심으로 고마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날 마음이 무너졌었다. 무언가 꾸준히 지치지 말고 나아가야 하는 일을 택할 때에는 무너지고 무너져야 할 운명을 택하는 것이며, 일어나고 또 일어나 나아가야 할 운명을 택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매번 하는 게 무너지는 일이라도 안 아프지는 않고, 일어나는 것 또한 마냥 쉽지만은 않다. 그런 운명을 택한 나는 늘 그렇듯 무너진 그날도 아팠다.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동네를 배회하던 그 찰나 다른 길 위에 같은 운명을 택한 그의 게시글이 띠롱 올라왔을 때, 무너진 내 마음을 다 쏟아 댓글을 남겼다. 아니, 남겨야만 했다. 그의 운명이 마치 내 운명 같았기에 그가 잘 되어야만 하는 날이었다. 그래야 나도 희망을 가지고 일어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그러니 그는 진심 담긴 내 응원이 고마웠겠지만 사실 나는 나를 응원하는 중이었다. 나는 잘 가고 있고 이 길 위에 결국 꾸준함과 노력이 결과를 줄 거라고. 그 진리가 통할 거라고. 그를 통해 그 사실을 보고 싶었다. 그가 포기하지 않고 결국엔 해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마음을 추스르고 또 일어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맛있는 걸 먹거나 재밌는 걸 보는 일, 쇼핑을 하거나 즐거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그 방법들 중 하나일 테다. 하지만 추슬러야 할 마음의 무게가 만만치 않을 때는 그 행위들이 그리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찰나의 회피나 환기는 거품처럼 한순간 일 뿐이다. 그럴 때는 도망치지 말고 결국 모든 시선을 마음을 향해 두어야 하는 거 같다. 동네를 배회하더라도 마음은 마음에 있어야 하고, 좋아하는 물을 보고 있더라도 마음은 마음에, 훌쩍 여행을 떠나도 마음에, 혼자 카페에 고립되어 일기나 글을 쓰더라도 마음에... 어찌 되었든 마음에 시선이 있어야 끝내 그 무게를 덜어낼 수 있는 거 같았다. 그리고 그 마음을 진심을 다 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쏟는 거 역시 또 하나의 방법이겠다. 시선이 나에게만 맺히면 마음이 도무지 긍정회로가 작동되지 않고 자꾸만 처절해 지기만 할 때가 있다. 그럴 땐 제3자에게 시선을 돌리는 거다. 내 삶은 현재의 절망만 보이지만 상대의 삶은 앞뒤 좌우로 넓게 관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삶이 그가 생각하는 거보다 불안하지 않고 절망스럽지도 않아 보일 때, 응원받아 마땅해 보일 때, 희망을 주고 싶을 때, 제3자의 눈으로 내가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