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윤희 Apr 25. 2022

'열심히 해'에 반격하는 고집.

   '고집', 고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집 있다.'라는 수식어는 부정적인가? 긍정적인가? 나는 어릴 적, 집 안에서 소문난 고집쟁이 었다. 순한 아기 출신으로 순한 탈을 쓰고 고집을 부릴 땐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고 한다. '아휴, 정윤희 고집...', '고집하면 정윤희지.'라는 말을 참 많이 들으며 자랐는데, 그땐 그 의미가 어떤 건지 명확히 알지 못했음에도 어른들이 뱉는 뉘앙스나 제스처를 통해 긍정적이지 않은 의미라는 것쯤을 느낄 수 있었다. 문학적인 표현으로는, 어른들은 정윤희의 고집을 말하며 혀를 내 두르곤 했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거 같다.



   어느 것이든 그렇지만, 고집 있는 성격은 긍정과 부정 둘 다를 내포하고 있다. 누군가가 내게 한 말에 의하면, 고집이 잘 쓰이면 나쁜 건만은 아니라 했다. 이 말에서 고집은 어쩐지 부정적인 느낌이 더 짙게 느껴지긴 하나, 뭐든 잘 활용하기 나름이고 또 뭐든 넘치면 부정적인 색이 더 짙어지기 마련이기에, 어릴 적 이름같이 따라붙던 고집에 대한 그의 견해를 (이미지 실축이라 생각하지 않고)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고집은 30년이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인생에게 때때로 불편을 끼쳤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꽤 좋은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믿는다. 비록 어느 하나에 폭발적인 에너지를 며칠 이상 지속해 내지는 못하지만, 고집이 근성과 끈기로 발휘되어 평생에 걸쳐 끝까지 놓지 않고 노력하는 데에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옅을지라도 끊임없이 포기하지 않고 가는 것 말이다. 이것이 이때껏 나를 기죽이지 않았던 자존감이자 스스로에 대한 보이지 않는 믿음이자 확신 그리고 전략이자 승부처였다.



   노력, 열정, 끈기, 고집 빼면 시체가 될지 모를 내가 한때는 '열심히 했다.'라는 말조차 입에 올릴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유에  , 열심히 했다는 기준은 한없이 커질  있고,  세상 누군가는 나보다  열심히 했을 테니 감히 함부로 열심히 했다고 기준 세우는  경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죽을  같이 열심히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해야 했고, 더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때와 다르지 않게 인생  부분에 대해 열정과 노력을 쏟고 있으며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누군가 '좋은 기회니까 열심히 '라고 말했을 , 불쑥 반항적인 대답이 튀어나왔다. 당신은  시절 그토록 대충하고  즐기며 살지 않았었냐며...  한번 먹자 처럼 상투적인 마무리 인사였는데,  말에 괜히 시비 걸듯 스크래치를 내버렸다. 의도를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리고 며칠 동안 그렇게 반응했던 태도에 대해 곱씹었다. 아니, 다가온 변화에 대해 곱씹었던  같다. 삶에 긴장도를 낮추고, 여유를 주고, 나를 인정하고 들여다보는, 그런 시간들에 대한 결과물 같았기 때문이다.



   그가 하필 그런 인사를 던졌던 시점, 나는 노력이 빚어낸 결과물에 대해 지쳐있었다. 노력하고 벽에 부딪히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 또 부딪히고 부딪히던 인생이 또 벽에 부딪혀 멍이 들어 있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철갑을 두른 딱딱한 막대기처럼 꼿꼿하던 나에게 탄력을 주고자 노력을 인정하고 아파할 기회를 주어보니, 생각보다 대단히 해 온 나 자신과 그만큼 벽이 많았던 인생이 화가 나고 싫은 게 아니라 아프기 시작한 찰나였다. 그런데 또다시 벽에 부딪혀 넘어진 나 자신을 보면서 그게 좀 지치고 힘들었다. '이제 좀 그만, 열심히만 하는 일을 그만하고 싶다. 얕더라도 결실을 보고 싶다. 나는 언제까지....' 뭐 이런 감정들로 뒤섞여 있던 시점에 하필 듣기도 싫은 '열심'이라니. 사정을 알리 없는 사람에게 괜히 반격을 해 버렸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해온 노력을 인정하고 인정받는, 세상이 알아주지 않을 지라도 노력이란 게 잘해 온 일인 거라면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는 듯한 마음이 담긴 반응, 그런 반응을 한 자신과 스스로에게 쉼을 허용한 그 변화가 낯설고도 마냥 나쁘지 않았다.



   이제 나는 나를 아파할 것이다. 위로할 것이다. 그리고 또 나아갈 것이다. 때로는 열심히 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도 괜찮을 것이고 그리고 또 마음 가득 애써볼 것이다. 기대도 해 볼 것이고 지금과 같더라도 막막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내겐 믿고 맡길 고집이 있고, 나를 향한 진심을 말로 할 줄 몰라 겨우 던진 말이 ‘열심히 해’ 였던 사람처럼 티 나지 않지만 무뚝뚝하게 응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벽에 부딪혀 쓰러져 방황을 하더라도 그 시간을 마음으로 함께 기다려 줄 사람들이 손가락 발가락을 다 합쳐도 부족할 만큼 존재하고 있기에 괜찮을 것이다.



   이제는 '고집하면 정윤희, 아휴 정윤희 고집', 그 뉘앙스를 재해석한다. 그 뉘앙스는 ‘(여러모로) 대단하다.’라고 번역하며, 그들에게 내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해석하겠다. 그 안에는 나의 힘이 들었다. 끈기도, 근성도, 사람도, 믿음도. 그러니 때때로 대충하고 그 가치를 잘 즐기겠노라!

이전 12화 오늘도 사막 모래 위에 누워 잠이 들지라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