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세계
1년, 나를 둘러싼 철갑을 벗겨내고 진실과 마주하겠다는 선언 그리고 그에 따라오는 감정 변화를 글로 풀어낸 지 1년이 넘었다. 나의 불안을 주저리 거창하게 써 놓은 글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 준 예쁘디예쁜 누군가는 ‘너는 글 말미에 잘 이겨낼 거야, 파이팅이라 해 놓고 그다음 글에 또다시 아프다, 아프다 한다.’며 웃어 보였다. 내 진지한 글들이 웃겼다니, 웃프지만 그가 콕 집어낸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혹 그게 좀 모순적이어도 어쩌겠는가, 마음속에 판도라 상자가 생성되어있는지 몰라서 열지 못 했고, 알고도 두려워서 차마 열 수 없었던 그곳에는 한 가지의 문제만이 묵혀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을. 온갖 복합적인 인생이 뒤섞여 있는 오래되고도 복잡한 것들 사이사이 뒤엉켜 있는 먼지들을 잘 털어내기에는 한 순간의 파이팅만으로 해결될만한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토록 열기 두려웠던 판도라의 상자, 나는 지난 1년을 후회할까? 1년 전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라고 조언할까?
사실은 잘 모르겠다. 나는 그로 인해 쾌청하던 마음에 어둠이 내렸다. 슬픔이 생겼고, 스스로에 대한 애처로움이 생겼고, 한 시절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 이제 와서 생겨버렸다. 그리고 너는 좀 외로워라는 말을 들을 만큼 혼자여도 꽉 차 있던 감정에 ‘그 어떤 걸로도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외로움이 생겼다. 밝은 점이라고는 딱 한 가지, 스스로에 대한 허용, 그런 나라도 괜찮다고 아껴줄 정도의 또 다른 모양의 자존감이 생겼다는 점뿐이다. 그래서 때때로 많은 것을 씩씩하게 외면하고 무시한 채 밝음으로 나를 감싸 냈던 때를 그리워했다. 어둠이 주는 감정적 힘듦을 감당하기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또 그럼으로써 그것이 과연 괜찮아졌는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다만, 그 시간이 유용하게 쓰일 때도 있음을 인지하며 살아갈 뿐이다. 주변과 세상의 감정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긍정과 완벽을 갈고닦던 시절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네 말이 이성적으로 다 맞지만 생각처럼 마음이 그렇게 바로 먹히지는 않는다.’
이런 말을 들었던 그때, 더 이상 주변에 긍정 혹은 이성적으로 내려지는 판단에 대해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비록 그게 왜 안 되는지, 생각해보면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이 분명 맞는데 왜 마음이 흔들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다름과 이해할 수 없음이 있지만 그럼에도 인정받아야 할 무수히 많은 다름들이 존중이란 이름으로 공존해야 할 테니까.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면서 비로소 이성이란 것이 완전히 작동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참아지지 않는 감정과 감정에 주도권을 뺏겨야만 하는 순간들, 도무지 그칠 줄 모르는 감정이 나를 불안에 떨게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세상에 도덕과 이성으로는 해석되지 않는 많은 감정과 현상이 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마음처럼 쉽게 제어되지 않는지도 말이다. 이를 막 맞닥뜨린 이 시점에서, 이게 과연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이라면 덕분에, 세상을 함께 아파할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은 부분을 공감할 수도, 가슴 깊이 위로할 수도 있게 되었으며, 세상의 이야기를 더 많이 포용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애써보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너무 많이 아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왔던 나는, 세상에 배신을 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나의 순수의 세계는 막을 내렸다.
세상은 누구도 피할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슬프고 불행한 운명이 얽히고 얽혀 복잡하게 꼬인 채로 인간의 감정을 농락한다. 그리고 이유 없이 얻은 그 운명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으며 그에 따른 감정과 현실은 오롯이 인간의 몫이다. 잘 받아 내느냐, 잘 해석하느냐, 아니면 짊어지고 가느냐.... -1막을 마치며.
20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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