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食口)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치킨을 앞에 두고는 묘한 닭다리 신경전에 참가하고 싶지 않고, 부위별로 맛 구별도 잘하지 못하며, '튀긴 건 가릴 것 없이 신발도 맛있다'는 속설에 격하게 동의하는 편이다. 그래서 닭다리를 둔 눈치싸움이 시작될 것 같으면 재빨리 다른 부위를 집어 든다.
나는 닭다리 안 먹어
그렇다고 안 먹을 이유까지는 없지 않냐고 누군가 궁금해하면 종종 닭다리를 먹지 않는 고집스러운 진짜 이유를 말해준다. 삼 남매로 자랐고, 어린 시절엔 사소한 것으로 서로를 미워하는 혼란을 자주 겪었다. 나중에는 이유도 잊어버린 채 상대를 ‘나쁜 놈’으로 지목하는 싸움을 위한 싸움. 이는 먹는 것으로 시작되기 쉬웠기에 장을 볼때면 세 명이 모여 앉아 ‘내 것’을 익숙하게 배분했다. 하루는 다섯 식구가 저녁을 먹는데 하나 남은 닭다리를 서로 먹겠다고 싸우다가 (나는 직접적인 참여자가 아니라고 ‘기억’은 하는) 모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어영부영 식사를 마무리했다. 그날 이후 닭다리 정도는 동생들에게 양보하겠다는 나름의 결심을 했고 그게 지금까지 습관으로 남은 듯 하다. 다들 대학생이 된 지금에야 누가 닭다리를 먹나 쌍심지 켜고 지켜볼 이유 없이 손 가는 대로 집어먹는 여유가 생겼지만, 스스로 과하게 부여한 ‘장남의 책임감’에 시달리던 어린 나에겐 꽤나 중요한 문제였나 보다. 오래 기억에 남았다.
사람들은 흔히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부른다. 나는 이 식구(食口)라는 말을 좋아한다.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 사전의 설명 중 “끼니를 같이” 부분이 특히 좋다. 빠르게, 손가는 데로, 주로 때우는 것에 가까운 혼밥에 익숙해졌어도 여전히 여럿이 함께하는 식사가 더 좋다. 같이 먹는 사람들의 취향을 대강 맞춰, 장소를 고르고, 모여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일상을 나누는 순간이 좋다. 이 중에서도 구구절절 취향 설명이 필요 없고, 장소에 대한 특별한 이견 없이 모일 수 있는 사람을 비유적 의미에서 ‘식구’라 부르는 건 아닐까.
그렇게 성인이 된 우리는 집에서 먹는 시간보다 각자의 비유적인 식구들과 함께하는 식사 시간이 더 커졌다. 저마다의 취향이 생기고, 더욱 달라졌으며, 자연스럽게 싸웠다. 때로는 잘 안다는 편안함을 무기로 저마다 다르게 가지고 있는 식구의 무게감을 지레짐작하며 재단하려 들기도 하고 서로에 대해 채워지지 않는 기대로 실망하기도 했다. 적당히 떨어져 있음이 가족끼리의 코끝이 찡해지는 애틋함을 키우기도 한다는 말을 점점 공감하게 되었다.
최근에 코로나로 대면 수업이 없는 막내가 서울을 올라가는 것을 두고 일어난 작은(?) 소동을 전해 들었다. 막내는 서울에서 자취를 경험한 오빠들 이후 지금쯤 자신에게 순서가 돌아올 때라는 생각을 했고, 집에 있으면서 식구로서 저마다 가지는 기대의 차이로 장시간 충돌하면서 갈라지고 메말라가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이는 갓 전역한 극강의 현실주의자인 둘째가 보기엔 당연히 이해하기 힘든 주장이었다. 사이버 강의라서 본가에서 수업을 듣는 것이 충분해 서울을 올라갈 이유가 없으며 만약에 있다면 그것은 막내의 ‘철없음’ 일뿐이라는 논지로 싸움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이유는 점점 희미해졌고 하지 않아야 하는 말까지 주고받게 되었다. 둘째의 생각을 따로 묻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닭다리로 다투고 내 몫의 간식을 사수하던 시절이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 싸움은 막내 식구의 음식 취향을 아는 둘째의 사과로 끝이 났다. 둘째는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막내가 좋아할 만한 빵을 건넸고 이를 받아 든 막내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하던 간헐적 단식을 멈추고 눈물 젖은 빵을 먹었다고 했다. 닭다리를 서로 먹겠다고 싸우던 우리는 서로의 취향에 맞는 음식을 사서 사과를 건넬 줄 아는 사이가 되었고, 이를 들은 나는 정말「성장」한 걸까? 따위의 낯간지러운 생각들로 키득거렸다. 기숙사에 올라와 아크릴판을 사이에 두고 혼자 밥을 때우다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나는 여전히 닭다리를 먹지 않을 듯하고, 식구라는 말을 좋아할 것이며, 종종 '함께' 밥을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