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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arel Jan 11. 2019

독립수면을 선택한 이유

가족 모두의 점수를 따지는 육아

베를린은 내게 고마운 곳이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있듯, 엄마로 살기 시작한지 3살 무렵, 그곳에서 배운 버릇들이 내게 여전히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 아이는 왠만해선 항생제를 쓰지 않으며, 최대한 바깥에서 뛰어노는 것을 1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게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육아 전반을 대하는 태도다. 독일에서 육아를 하면서 내가 세운 육아의 원칙은 이렇다. 가족 모두의 점수가 높은 육아가 돼야 한다는 것. 아이만 100점인 육아가 아니다.


아이를 낳기 전, 여러 육아서를 읽어보면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많았다. 부부사이가 나빠진다는 것. 아이가 있으면 부부만의 시간을 가지기가 어렵고, 주로 엄마가 아이와 함께 자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보니 정말 그랬다. 부부의 니즈는 뒷전이 돼고, 아이가 가장 우선으로 등장한다. 아이를 재우기 위해 부부 중 한사람이 아이 방에서 자야하고, 육아가 끝난 후에는 집안일을 해야 한다. 부부 두 사람의 시간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이다.


베를린 뿐 아니라 대부분의 서구 사회에서는 아이를 따로 재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따로 재우기 시작했을 때, 죄책감이 들었다. 대부분의 한국 엄마들은 같이 잘 뿐 아니라 아이를 문자 그대로 '끼고' 자기 때문이다. 옆에서 아이가 잘 때까지 함께 있다가 동작 그만인 상태로 살금살금 빠져나와 갖는 게 유일한 엄마아빠의 시간이 된다. 아직 돌도 안된 아이를 혼자 재울 때, 아이의 낙상을 방지 하기 위해 침대 옆에 높은 범퍼가드를 둘러쳐줄 때, 특히 더 죄책감은 몰려왔다. 이렇게 하지 말고 그냥 같이 자고싶다, 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양가 부모님의 반대도 엄청 심했다.


그때마다 나는 상황별로 가족 모두의 점수를 따지려고 애썼다. 아이가 우리와 함께 잔다면 아이는 혼자 잘 때보다 더 좋을 지 모른다. 아이의 만족도는 90점 정도 될 수 있겠다. 남편과 나는 아이가 옆에 있으면 신경쓰여 제대로 잠을 못잘 것이다. 아이가 잘 때까지 같이 옆에 누워있거나, 그러다 잠들어버리거나,어쩌면 아이가 우리 인기척에 깨서 아예 우리만의 시간이 불가능 해질 수도 있다.

평소 남편과 나의 일과는 이랬다. 아이를 오후 7시쯤 재우면, 내가 요리를 하고 남편이 아이 빨래를 돌리고 집정리를 한다. 오후 7시 30분쯤 같이 식사를 하며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내일 계획도 세운다. 아이와 낮에 시간 보내는 일과는 다른 행복이 이 시간에 있다. 그리고서 우리부부도 보통 밤 10시 전후로 잠자리에 든다. 양가 어른 없이 타국에서 육아하는 부부의 유일한 체력 비법은 이 것이었다. 일찍 잠자기.


어느 여름날 우리집의 저녁


우리가 만약 아이와 같이 잠을 잔다면 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저녁 9시쯤 늦은 저녁을 같이 먹거나, 혹은 같이 먹지 못할 수도 있다. 잠자는 시간도 늦어지고, 아이와 함께 자면 신경도 더 많이 쓰게 되니 수면의 질도 떨어지게 될 것이다. 부부사이의 돈독함도 더 떨어질 것이다. 그 생활에 대한 우리 부부의 만족도는 70점 이상으로 내려갈 것이다.


베를린 생활을 하며 내가 내린 답은 이렇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 모두의 점수가 높은 방향을 택할 것. 우리 가족의 경우 아이와 부모가 따로 잘 경우, 가족 전체의 만족 점수가 더 올라간다. 또 사실은 따로 잤을 때 아이 수면의 질도 훨씬 좋았다. 부모 뿐 아니라 아이도 부모의 코골이나 뒤척임 등에 적잖이 방해를 받는 것이다. 또 그냥 꿈을 꾸다 일어났을 뿐 다시 잠들려고 하는데, 엄마가 이 순간을 캐치해서 말을 걸고 달래려고 한다면 이 또한 아이의 자연스러운 수면 흐름을 방해하는 행동이 될 수 있다.


물론 점수로 환산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우리 아이가 잘자도 절대로 아이 혼자두고 외출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아이가 중간에 깰 가능성이 1000분의 1이라고 해도, 1000분의 1이라도 그런 일이 생기면 모두의 점수가 0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아이의 점수가 높은 것이 가족 모두의 점수가 높은 방향인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우리 부부가 저녁 7시에 외식하고 싶다고 치자. 아이는 그 때 잠자야 할 시간이니 식당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투정을 부릴 확률이 높았다. 우리 부부도 자연히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엔 내가 외식하고 싶은 욕구가 100점이어도, 가족 전체의 점수를 따졌을 땐 집으로 가는 상황의 점수가 더 높으니 외식을 하지 않는 것이다.


상황별로 가족 모두의 점수를 따지는 건 당장은 어떤 한사람이 희생하는 것 같아도, 결국엔 가족 모두에게 좋은일로 돌아왔다. 아이의 점수만 생각해 따라주다가는 결국 엄마아빠도 사람인지라 어느 한 지점에서 폭발하게 된다. 독립수면을 하면서 엄마아빠도 푹 자고, 육아 스트레스도 풀고 재충전의 기회를 가지면 결국 다음날 아이를 훨씬 기분 좋게 대하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또 다시 우리 가족의 점수를 높이는 일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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