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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arel Jan 02. 2019

카시트에 잘 앉게 태어난 아이

카시트 없으면 택시도 못 타는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하람이를 포함한 세 식구가 교외로 드라이브 가게 됐다. 드디어 차가 생겼기 때문이다(독일에서 독일 차를 구매하는데 한국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다). 베를린에 오고 나서 한참을 대중교통으로 시내 구경만 다녔던 터라, 차로 하는 이동을 앞두고 가족들 모두가 설렜다(하람이도 그랬을 거라 믿으며). 우리는 베를린에서 1시간 거리의 포츠담을 첫나들이 장소로 정했다. 차를 타고 거리를 지나가는데 평소 버스,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고 도착해야 하는 장소들이 금방 나타났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닐 당시에는 힘들다고 생각 안 했는데, 막상 차를 타고 보니 어떻게 다녔나 싶었다. 차를 가진 기쁨은 속도 제한이 없는 독일 고속도로를 달릴 때 절정에 이르렀다. 내 차가 분명히 시속 140㎞로 달리고 있는데, 옆 차는 나보다 훨씬 빠르게 지나간다. 이것이 독일의 아우토반인 모양이었다. 


베를린 교외에 위치한 포츠담의 상수시 궁전


가을의 문턱에서 만난 포츠담 상수시 궁전은 낭만이 넘쳤다. 왕가가 살았을 궁전을 엿보며, 그들이 거닐었을 정원을 걸으며, 우리는 유럽에 사는 진수를 제대로 맛봤다. 베를린의 시간도 한국에 비하면 훨씬 느리게 흘러가는데, 포츠담의 시간은 더 천천히 흘렀다. 가족이 여유 있게 산책하고, 근처 식당에서 와플과 아이스크림을 시켜 함께 나누어 먹고 나니 어느새 아기의 목욕과 취침시간이 다가왔다. 교외로 나오느라 낮잠도 제대로 못 잔 10개월 하람이는 이미 조금씩 칭얼거리는 중이었다. 낭만에 취해 우리가 그 신호를 애써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었다. 집까지는 50분이면 도착하니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여유도 낭만이 지어낸 게 아닌가 싶지만 말이다. 우리는 일단 졸려서 칭얼대는 아이를 차 안의 카시트에 앉히고 출발했다. 


카시트에 앉기 싫은 아기 하람이


하람이는 한국에서도 대부분 카시트에 앉아 이동했다. 대부분이라 쓴 것은 아이가 칭얼대거나 울 때 가끔은 내가 안고 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는 대부분의 거리를 카시트에 의젓하게 앉아서 이동해 어른들의 칭찬을 받곤 했다. 그런데 이 날은 달랐다. 카시트에 앉자마자 칭얼거림이 맹렬한 저항의 울음으로 바뀌었다. 잠은 오는데 처음 앉아본 이 카시트에서 잠들기는 영 어려운 모양이었다. 아이를 안아 재우면서 갈까 하다가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로마에서 살려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독일은 카시트 규정이 굉장히 엄격하다. 만 12세 이하 거나 키 130㎝ 이하는 반드시 카시트에 앉아야 한다. 규정이 엄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아이는 카시트에 앉는 게 당연하다는 합의가 이뤄져 있다. 카시트에 아이를 앉히지 않으면 아이 안전에 무책임한 부모가 되기 십상이다. 자기 차에선 어찌어찌 경찰을 피해 카시트에 앉히지 않고 태웠더라도, 택시를 탈 때는 카시트에 태우지 않으면 아예 출발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는 당연히 독일 공항에 내렸을 때부터 적용된다. 가끔 독일에 온 아이 부모들이 이를 모른 채 택시를 타려다 승차 거부를 당해 당황하는 경우도 보았다.  


잠도 많이 못 자 짜증 나 죽겠는 하람이는 내가 카시트에서 꺼내 주지 않자, 정말 문자 그대로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카시트는 아이를 고문하려고 앉힌 것이 아니다’ ‘카시트에 앉아서 가는 것이 아이에게 훨씬 안전하다’는 말을 나는 주문처럼 외우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남편도 묵묵히 운전대만 잡았다. 독일에 와서 한 번은 겪어야 할 통과 의례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아이 울음에 무뎌질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결국 20분쯤 지나 나는 아이를 카시트에서 꺼내 품에 안았다. 아이는 내 품에서도 한참을 울다 집에 도착하기 10분 전쯤 잠이 들었다.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것도, 낭만이 가득한 교외 나들이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독일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카시트에 잘 앉는 걸까. 카시트 규정이 엄격한 나라에서 산다고, 카시트에 얌전하게 앉을 수 있게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람이와 비슷한 개월 수의 딸을 둔 독일인 부부에게 카시트 잘 태우는 비법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 가정은 대답으로 얼마 전 근처 농장으로 아이와 함께 나들이를 갔다가 난리가 난 얘기를 들려줬다. 놀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지연돼 아이 취침시간보다 늦게 돌아오게 됐는데, 카시트에 앉은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래서 어찌했냐고 물어보니 부부는 답했다. "그대로 뒀지."  독일 아이라고 카시트 맞춤형으로 태어나진 않았던 것이다.


독일 아이들도 카시트에 처음 앉을 때는 그 성향에 따라 쉽게 적응할 수도, 심하게 울기도 한다. 다른 것은 부모의 태도다. 카시트처럼 안전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독일 사람들은 철저하게 원칙을 지킨다. 아이가 운다고 이 원칙을 어기면, 아이는 다음번에도 '울면 카시트에서 내려주겠거니' 생각한다. 정말로 아이가 카시트에 앉아있지 못할 위험한 순간이라면 당연히 차를 세우고 카시트에서도 내려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아이가 카시트에 앉는다는 원칙을 굳건하게 지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아이가 카시트가 아닌 일관된 원칙에 적응하게 된다. 부모뿐 아니라 사회도 카시트 탑승을 돕는다. 카시트가 설치된 택시가 별도로 존재하고, 차량 공유 서비스에서도 카시트를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으며, 렌터카 업체 한편에는 카시트 대여소도 함께 있다. 


독일에는 카시트와 관련해서 이런 얘기도 있다. 한 부모가 아이와 차를 타고 가는데, 카시트에 앉은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하는 수없이 아이 엄마가 아이를 카시트에서 꺼내 품에 안았는데, 마침 경찰 단속에 딱 걸렸다. 경찰이 왜 아이를 카시트에 앉히지 않았느냐고 묻자, 아이 엄마가 답했다. “아이가 너무 울어서요.” 경찰이 되물었다. 

“아이들은 우는 게 일인데, 운다고 아이를 안 앉힌다는 게 말이 되나요?” 


이 얘기를 들으니 가끔 거리에서 독일 엄마들이 아이가 유모차에서 난리를 치며 울어도 아주 태연하게 유모차를 끌고 가는 장면이 이해가 갔다.


카시트에 잘 앉으니 유럽 자동차 여행도 가능했다_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몇권 챙겨가면 훨씬 쉽다.


그때부터 우리 부부도 하람이가 울더라도 카시트에서 내려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했다. 아이가 아프거나, 문제가 있어 카시트를 타지 못할 경우엔 차를 세워 카시트에서 아이를 내리게 한다. 대신 아이가 견딜 수 없는 장거리는 피하고, 아이가 카시트를 오래 탈 수 없는 컨디션에는 차를 태우지 않기로 했다. 카시트에 아이가 잘 앉아있을 수 있도록 아이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 몇 가지를 함께 챙긴다.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도 좋다. 미디어 노출은 웬만하면 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어떤 차, 어떤 카시트라도 잘 앉고 잠도 잘잔다


신기하게도 하람이는 이 원칙대로 잘 따라와 주었다. 가끔 조금 싫다고 떼를 쓰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내 그쳤다. 어느 순간부터는 카시트를 타기 싫다고 우는 경우가 거의 없어졌다. 잠도 잘 자주 었다. 한번 카시트에서 잠들면 2시간 이상을 자 3시간 내외의 장거리 여행이 가능한 시대를 열어주었다. 그날 하람이의 20분 울음에 우리가 카시트 태우기를 포기했더라면, 오히려 우리는 10분 마트 나들이도 못했을 것이다. 


이제 카시트 9단이 된 우리 아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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