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홍콩에 왔더라
퇴사를 앞두니 내가 몸 담았던 이 곳이 더 참담했다는 것을 매일매일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 곳을 떠날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또 한 편으로는 내가 애정을 가지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이 곳이 고작 이 정도였다는 것에 큰 실망을 했던 나날이었다. 그래도 내 표정이 점점 좋아지고 있었고, 별 이유 없이 웃음이 다 났다.
미리 알게 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게 물었다.
혹시 ‘그 사람’ 때문이냐고. 또 누군가는 말했다. 이제라도 짐작했던 내용들 말고 진실을 얘기해줄 순 없겠냐고. 떠나가는 길을 택한 그 순간까지 우리는 아주 솔직할 순 없었다. 빙하처럼 표면에 드러난, 우리가 겪은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부만 말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피해받을 제삼자를 걱정해야 했고, 나는 조심스러웠다.
믿을만한 몇 사람에게 기억에서 잊고자 했던 몇 사례들을 알려주고 나면 반응은 주로 두 가지였다. 믿지 않거나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다거나. 그럼 뭐하나. 이미 우리는 상처 받았고, 사회에 첫 발을 디디며 가졌던 포부와 희망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미 얼굴에서는 더 이상 표정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근데 참 마지막까지 ‘그 사람’은 한결같았다. 그만두겠다는 내 말에 돌아오는 첫마디.
“그래? 갈 곳은 정해진 거야?”
마치 이 모든 일을 예상했다는 듯, 내가 퇴사하는 건 내가 희망하는 직무를 찾아가기 위한 도전일 뿐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과 자신의 태도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한 그 말도 안 되는 대화. 그렇게 마지막 한 달이 지나도록 나는 결국 내가 퇴사하는 이유에 관해 단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고, 하고 싶었던 말들과 상처 받은 마음을 꾹꾹 내 속에 눌러 담은 채 회사를 떠났다.
끝까지 나한테는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실감했다. 누가 누구랑 사귄다더라, 누가 언제 결혼한다더라 이런 일상적이면서도 사생활이 가득 담긴 이야기는 반나절이면 소위 말하는 ‘아싸’가 아니면 다들 알고 있는데, 누군가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로 고통을 받고 있을 땐 굳이 붙잡고 말해야만 몇몇이 제대로 들어줄까 말까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이직을 준비하는 것조차 무서워졌다. 일하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장기직으로 처음 마주했던 곳에서 겪은 일들이 모든 곳에 해당하는 일일까 봐. 애쓰고 도망쳐서 얻은 결과가 도돌이표일까 봐. 내 노력으로는 그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을까 봐.
다행히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