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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엔 Nov 08. 2019

퇴사는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홍콩에 왔더라


정말 퇴사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건 아마 내가 출근한 지 일주일이 아니라 일 년이 넘었기 때문이며 다음 회사는 좋은 사람들만 있을 거라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변화를 주어야 한다면 20대에 실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의지가 꺾이지 않기 위해 주변에 소문내고 다녔다. 소문내면 반응은 이랬다. ‘경력 없는 퇴사는 무서운 거다.’ ‘막 퇴사하기 전에 앞으로 내가 갈 길을 잘 생각해봐야 한다.’ 등등 불안하게 만드는 말들. 애정 어린 조언이라 화나지는 않았지만 금세 동요되어 함께 불안해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한 글을 봤다. 평생직장이 없는 시대, 언제나 퇴사를 대비하고 있어야 하며 능력을 키우면 퇴사가 두렵지 않을 거라는 글. 그 당시에 내게 가장 필요한 조언이었다. 나를 객관화시켰다. 나는 이 곳에서도 정말 뛰어난 사람인가, 여기서는 배울 게 없는가, 나가서는 또 뭘 할 수 있을까, 경력이 되지 않더라도 여기서 버틴 2-3년을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까.




처음 퇴사를 해야 하나 암담했던 때, 그 글을 보고 나를 진단했다. 막상 업무를 해보니 부족한 점이 많았던 때, 나는 당장 퇴사하지 않고 이 회사에서 내가 배우고 싶은 점은 최대한 배워가겠다고 생각했다. 또 꾸준히 공부하는 습관과 매일의 업무를 정리하는 좋은 습관을 가지기로 했다.


우선,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영어와 관련된 일은 꾸준히 했지만 비즈니스 영어와 아주 디테일하게 내 의사를 전달하기에 내 영어실력은 너무 부족했다. 비싼 돈 들여 과외도 해보고, 전화영어도 해보고, 아이엘츠 시험도 쳤으며 국제 교류 업무를 할 때는 관련 용어를 2-3시간씩 찾아가며 준비했다.


그게 빛을 발한 건 아쉽게도 딱 한 번이었지만 그래도 그 모든 시간들이 모여 꽤 값진 결과를 만들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보고서를 잘 쓰는 분들의 문서를 탐색했다. 매일 문서만 만지는 게 주된 업무인 일, 보고서를 잘 쓰고 싶었다. 아쉽게도 보고서 전체를 쓰기보단 표를 채우는 일이 대부분이고, 잘 쓴 문서를 많이 볼 기회가 없어 이건 실패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은 배우려고 노력하고, 내가 이 회사와 산업에서 알고 싶은 점은 더 알려고 노력하다 보니 더 이상 한 곳에 머무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감보다는 여러 상황을 비교한 결과 적어도 한 가지는 개선할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첫 정규직 회사를 떠났다.

꽃도 받고, 축하도 받으며.


퇴사 기념으로 받은 꽃다발

막상 떠나려고 보니 모든 게 아쉬웠다.

매일 같이 점심과 술을 먹던 동료, 맛집을 찾아다니던 동호회, 익숙해진 모든 것들, 그리고 너무 싫었지만 동시에 이미 몸에 익어버린 일들.


1년이 지나면 그렇다. 내가 모든 걸 통제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는 없어도 어떤 업무가 언제쯤 진행될지, 언제 내가 바쁜지, 이 일을 끝내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지 알게 된다. (내가 속한 직장은 그랬다.) 출근하기 딱 싫지만 이걸 버리는 것도 하루아침에 가능하지는 않았다. 갈수록 아마 용기도 없어지고 어딘가 조금은 만족스럽기도 했기 때문일 거다.


그래도 그 아쉬움을 하나둘 버리는 일 년을 거쳐 나는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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