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홍콩에 왔더라
무섭게도 다시 그 증상이 생겨버렸다.
과호흡과 갑자기 시야가 흐려져 꼼짝할 수 없는. 그 무서운 증상이 홍콩에 와서 벌써 두 번이나 나타났다. 한국에서 이런 일은 없었기에 처음에는 그저 너무 습하고 더운 날씨에 적응하기 위한 과정이라 여겼다. 아니, 믿고 싶었다. 이 어지럼증에 져서 한국에 돌아가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그런데 다시 이 증상이 나타났고, 스멀스멀 다시 그 악몽 같던 회사생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말초 신경계..... 스트레스받지 말고 쉬세요
갑자기 어지럽고 나서 하루 종일 위액을 토한 뒤에 너무 무서워 뇌와 관련된 각종 검사를 다 마친 후에 내가 받았던 답변이었다. 뇌에도, 귀에도 문제가 없으니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앞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도 큰 상관없는 그 말들. 너무 허무했다. 그리고 야속했다. 정확한 원인이 있길 바랐다. 스트레스는 그 환경에서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요인이었으니까.
이제는 퇴사 과정 이야기는 끝내고 다른 글을 시작해보고자 했는데, 역시 제대로 마무리 짓지 않은 이야기는 어딘가에 남아있기 마련이었다.
원인불명의 어지럼증으로 남은 그 날들은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어제도 오늘도 내 영혼은 곱게 집에 접어두고 오지 않으면 나를 지킬 수 없었다. 다방면에서 오는 부정적인 평가에 나는 나날이 어두워졌고, 더 잘해보고자 했던 노력은 성장이 아니라 상처로 남았다.
팀원도, 업무를 나누어야 하는 포지션도 나 혼자가 아니었지만 잘못되어 바로잡지 못한 업무분담에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는 일이 많았다. 억지로 떠밀려 팀장 직무 대행처럼 되어버려 회의에도, 자료 취합도, 다른 팀과의 협의에도 당연하게 내 의무가 되어버린 날들이 늘어갔다. 부담감도, 업무량도, 거기에 때로는 팀장이 처리하지 못한 일도 내게 비난으로 돌아왔고, 허덕이며 일을 처리해 두면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며 팀장은 다시 나를 비난하기 바빴다.
내 마음이 반짝거리던 6개월을 제외하고, 나머지 1년 반이라는 시간 고독-부담감-우울함-좌절이 나를 지배했다. 오죽했으면 병원에 실려간 동료가 부러웠다. 성장할 여지도 없고 관심 있는 분야도 아니며 연봉도 적고 재미도 없는, 그 무엇 하나 성에 차지 않았던 이 직장에 개인 사정으로 당장 떠날 수 없다는 나의 운명이 야속할 뿐이었다.
신기하게도 20여 년간 가져온 내 모습이 사라지는 건 몇 달이면 충분했다. 입사하기 3달 전까지 나는 매일 예쁜 옷을 입고 활짝 웃으며 출근해 다른 동료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밝은 직원이었는데, 어느새 술로 이전에 입던 옷이 맞지 않아 당장 입을 수 있는 옷만 입고 8시 55분에 간신히 출근하느라 매일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 주변에서는 나를 안쓰러워하기 바빴고 아마 여전히 나를 칙칙한 색으로 기억할 것 같다.
그렇게 매일 집에 와 울고, 야근하느라 상한 몸에 어지럼증이 남았다. 어지럼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날에는 약이 없으면 글을 읽어내기가 힘들었다. 그게 여전히 나를 괴롭힐 줄이야.
그래서 다시 깨닫는다. 나를 괴롭히는 게 있다면 해결하는 법을 어떻게든 찾아내야지 그걸 견디기만 하면 결국 어딘가에는 자국이 남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