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 원이 넘는 월세에도 행복했던 공간
앞서 첫 집에서 사고가 발생한 후, 이사 결심이 굳어버렸다. 사실 그전까지는 살던 동네도 꽤나 맘에 들고 일부 금액을 저축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기에 잠시 망설였었다. 하지만 바로 앞 집 아저씨가 술에 취해 나의 안전을 위협하게 되고, 그 사과를 내가 아닌 우리 집주인이 받는 이상한 상황이 되었을 때 다른 걸 더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두 번째라고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내가 원하는 바가 아주 명확했고 코로나로 집 값이 많이 줄어든 때라 월세가 거의 30만 원 이상 낮아진 시세로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마침 홍콩섬에도 새로운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었다. 덕분에 앞서 함께 했던 동료가 떠나며 꼭 홍콩섬을 살아보라고 했던 제안을 나도 실천하게 되었다.
집을 2-3군데 봤을 때는 정말 이사를 하는 게 맞는 것인가 의문이 드는 때도 있었다. 이전보다 큰 평수로 갈 수 있는 조건이 되었지만 교통편이 애매하거나, 집이 낡았거나, 근처에 마트가 없었다. 범위를 넓혀 집을 10개쯤 보고 나니 교통, 치안, 주변 인프라, 그리고 심지어 신축인 2곳을 찾을 수 있었다. 내 예산 범위보다 매달 7만 원 정도의 돈을 더 지불해야 했지만 7만 원으로 살 수 없는 만족감을 줄 조건이었다.
후보 중 한 곳은 지하철과 트램이 1분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바다가 보였다. 다른 한 집은 교통편은 약 5분 거리에 있었지만 웬만한 호텔 뺨치는 야경을 통창이 담고 있었다. 행복한 고민이었지만 수백 번 고민했다. 주변의 의견도 딱 절반으로 갈려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결국 눈을 감아도 보이던 그 야경에 홀려 두 번째 집을 택했고, 그곳에 사는 동안 아주 매일이 황홀했다.
1년 남짓 살 예정이었지만 야경을 더 돋보이게 하고, 내 취향으로 가득 담고 싶었다. 이전 집에서의 노하우를 살리고 더 넓어진 공간을 활용해 내가 갖고 싶던 모든 걸 채웠다. 큰 테이블, 시네마 존, 포근한 침실까지. 그리고 우리 집은 파티를 위한 공간이 되었다.
회사와 멀지 않았기에 오기에도 쉬웠고, 6명 정도는 충분히 앉을 공간이 생겼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연말, 그 외 코로나로 지루하던 시간을 우리 집에서 보내곤 했고, 함께할 공간이 생겨나니 함께할 시간도 의미도 배로 늘었다.
해외생활에서의 나만의 공간이라 그런지 의미는 몇 배로 컸다. 어느 날은 혼자라서 너무 행복했고, 또 다른 날은 함께라서 풍족했다. 이제는 그 집에 더 살지 않지만 그 공간에서 만든 수많은 기록과 추억으로 아직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다시 그런 공간을 가꾸고 누릴 꿈을 꾼다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