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이 넘도록 벗어나지 못했던 코로나
공항에서 거의 10시간가량을 노숙했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모두 코로나 덕이었다. 철저한 검사와 격리가 필요했던 탓에 정말 공항 바닥에서 제공된 햄버거를 아침 대신 먹으며 검사가 나오기까지의 시간을 대기해야 했던 날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가혹한 게 아마 코로나가 유행하던 때의 홍콩이었다. 홍콩은 사스의 여파로 호흡기로 감염되는 전염병에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마침 검은 물결이 일던 움직임을 순식간에 잠잠하게 만든 것이기도 했다.
내가 홍콩에 가지 않아 얼마 되지 않은 때 코로나가 유행하게 되었고, 그 유행이 전 세계로 번져 급작스레 나와 동료들은 홍콩에 고립되었다. 국경이 너무 굳에 닫힌 탓에 한국에 돌아오는 2021년까지 아슬아슬했고, 장보기도 허용된 시간에만 가능한 이른바 ‘중국식 셧다운’이 시행된다는 말에 집에 못 가는 건 아닌지 끝까지 불안하기도 했던 때였다.
홍콩에서 코로나를 겪는다는 건 내겐 좁은 방에서 하루 종일 나가지 않는 일상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노트북 하나 간신히 올려둘 수 있는 작은 책상에서 맥북으로 처리가 어려운 한글 파일과 내내 씨름한 탓에 신경 쇠약을 얻으면서.
정확히 단계별 조치가 어땠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기억의 조각을 모아보면 홍콩에서의 코로나는 이런 거였다. 최소 몇십 만이 모이는 국제 전시회 개최 바로 전 날 취소, 영화관은 수시로 폐쇄, 등산 중에도 마스크 착용, 실내에서도 4인 이상 모임 금지, 입국 전면 금지. 수시로 변경되는 정책에 매일 아침 뉴스를 보는 게 일상이었고, 어제 계획했던 오늘의 일정이 틀어지는 것도 다반사였다.
마카오와 심천에 가족을 둔 동료들은 국경이 폐쇄되어 1년이 넘도록 가족을 보지 못하기도 했다. 온 거리가 북적거리던 홍콩에는 휑한 거리만 남아, 관광지를 가도 여유로운 곳이 되어갔다.
그 기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3주 격리였다. 하필 홍콩에 도착하기 하루 전인가, 격리 정책이 바뀌었고, 부랴부랴 호텔을 예약해서 돌아올 순 있었으나 솔직히 무슨 체험 같았다. 막 쌀쌀 해지기 시작한 때라 방은 추웠고, 밥은 거의 먹을 수 없었다. 하필 커뮤니티에서 도시락에 바퀴벌레가 살아서 돌아다니는 영상을 본 후론 밥은 더더욱 손댈 수 없었다.
정해진 날이 되면 몇 명이 나를 둘러싸고 코로나 검사를 진행했고, 간간이 윗방과 옆방에서 운동을 하거나 티브이 보는 소리로 주변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곤 했다. 이런 격리를 2주나 했다. 바퀴를 마주할까 차마 커튼도 제대로 열지 못하고 암흑 속에 2주를 보냈다. 또 하필 격리 해제 며칠 전 날 정책이 바뀌어 호텔에서 집으로 옮겨서 일주일 간 격리를 연장해야 했다. 집은 근데 그냥 천국이었다.
추우면 히터를 켜고 따뜻한 옷을 입으면 되었고, 깨끗한 침구를 휘감고 있을 수도 있었다. 호텔보다는 좁았지만 그저 좋은 격리였다.
어쩌다 보니 길고 길어져 약 2년의 시간을 코로나에 시달리다 홍콩을 떠났다. 왕래가 필요했던 분야라 번번이 내일만 기약하다 끝끝내 내가 기획한 것들은 문서로만 남겨 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