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을 보고
글 나다
“오늘이 며칠이지, 또 무슨 요일이지” 이런 질문에 달력을 찾아야 한다면 매우 단조로운 일상을 살고 있을 확률이 높다. 별다른 사건 없이 똑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한다는 것, 비슷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곧장 휘발되어버리는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의 연속. 이런 하루들은 시간을 잊게 하고 기억을 잃게 한다.
때로는 안정감을 주고 지속되면 일상의 권태감을 안겨주는 어떤 하루들,
이 영화는 아마도 그때즈음 발견한 영화였던 것 같다. 눈을 사로잡았던 건 <혼자 사는 사람들> 이라는 제목이었다. 주인공 진아는 영화제목 그대로 혼자 살고 있다. 누구의 출입도 허용하지 않는 작은 방에서 안정을 찾고 문밖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보이지 않는 경계 속에서 철저히 혼자 생활한다.
진아의 직업은 카드사 콜센터 상담사다. 매일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직업. 수화기 너머로는 누군가의 불안, 불만, 분노, 증오, 때로는 시간 여행자의 터무니없는 고민들이 쏟아진다. 진아는 비상식적인 민원들을 권태롭게, 그래서 안정적으로 처리한다.
나는 거기서 뜻밖의 위안을 얻었다. 처음은 열정도 자부심도 욕심도 없어 보이는 그 무미건조한 표정 속에서, 또 한 번은 ‘일’에서 ‘의미’를 찾지 않고,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가감없이 분노를 표현하는 그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우리는 타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거기에 동조하지 않으면 이기적이라고 평가당하고 일에서 의미를 찾지 않으면 열정을 잃어버린 세대라며 싸잡아 비난당한다. 적어도 내 주변에는 그런 이들이 많았고 그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나는, 끊어지지 않는 사회와의 고리 속에서 꽤 괴로워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 진아는 나의 친구이면서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에 약간의 배신감과, 그것보다 큰 속상함을 느꼈다. (cf. 진아는 지긋지긋한 아버지와, 관계의 선을 넘었던 후배에게 손을 내민다) 어느새 진아에게 정이 들어버렸던 나는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너의 권태로움을 지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진아는 작은 문 하나를 냈을 뿐이며, 여전히 그 안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권태로움은 내겐 가치 있는 감정이다. 무미건조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별일 아니라는 듯 모든 일을 흘려보내는 것. 너무나 지루하고 그래서 시들시들하고, 거창한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 힘. <혼자 사는 사람들> 속의 진아처럼 모든 일의 권태기를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