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자 영화 촬영기 '모두의영화'
모두의영화 프로젝트란?
같은 배우, 같은 장소, 같은 장비, 그리고 청년.
최소 장비와 인원으로 ‘청년’을 담은 두 편의 영화를 만듭니다.
영화를 함께 보고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상영회, 모두의 자리를 엽니다.
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누구의 영화’로 시작해 ‘당신의 영화’를 거쳐
종국에는 ‘모두의 영화’로 확장되길 바라는 청년창작 커뮤니티 프로젝트입니다.
1. 장비 세팅: 예정된 절망
유튜브나 각종 영상 자료들로 익힌 장비 사용법은, 매우 부족했다. 유튜브에서도 기본적인 사용 방법은 모두 나와있지만 막상 두 손으로 장비를 만져보라고 하면 백지가 된다. 사용 방법뿐만 아니라 장비를 잡는 기본적인 자세도 알지 못하니 앞으로 일어날 변수는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다.
촬영 장비는 매우 중요하다. 요즘은 휴대전화에 딸린 카메라도 성능이 좋기 때문에 카메라로 인해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다만 오디오와 조명은 달랐다.
오디오
촬영 현장이 소극장이기 때문에 소음이 적고 극장 내 조명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물론 외부보다는 소음이 적지만 환풍기, 바람소리, 문 바깥에서 나는 소리 등 외부의 소리가 완벽히 차단되지는 않았다. 카메라 내장 마이크만으로도 충분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완벽한 착각이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비해서 붐마이크를 추가로 대여했지만 녹음기와 마이크를 잘 다루지 못해서 문제가 생겼다. 소리가 너무 작게 녹음되었고 지향성 마이크였음에도 외부 사운드가 모두 같이 녹음되었다. 카메라 오디오보다는 또렷한 느낌이 있었지만 영화에 넣기에는 너무 부족했다.
조명
조명도 마찬가지였다.
극장 조명을 활용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지만, 십분 활용하는 방법을 모른다. 콘솔에 이미 세팅된 조명을 써야하는데 이 선택지에는 우리가 원하는 조명이 딱히 없었다. 객석에 앉은 배우의 모습이 잘 보여야하는데 객석을 비추는 조명은 한계가 있고 내부로 햇빛이 들어오지 않으니 세팅된 조명만으로는 역시 어두웠다.
그런 환경을 대비해서 조명도 하나 대여를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양쪽에서 균일하게 조명을 써야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하나만 빌린 탓에 화면 속 배우들이 새까만 우주를 표류하는 사람처럼 나왔다.
영상미. 그것은 다른 나라의 이야기였다. 조명이 없으니 주변이 잘 보이지도 않고, 소리가 너무 작아서 대사가 들리지도 않았다. 이를 어쩌나.
2. 촬영 시작: 끝마칠 결심
장비 셋팅이 끝나고, 이제 진짜 촬영을 시작해야 한다.
카메라의 녹화버튼을 누르고, 마이크의 녹음버튼을 누르면, 슬레이트를 친다. 감독이 "액션"이라고 외치면 배우는 연기를 시작한다. 보통 감독은 모니터를 보고 판단에 따라 OK / NG / KEEP을 외친다. 그럼 스크립터가 그 싸인과 이유, 씬에 대한 감독의 의견을 간략히 메모한다. 그렇게 계획에 따라 촬영을 이어가면 된다. 말은 참 쉽다.
최대의 적, 더위
대사 외에 다른 잡음이 함께 녹음되지 않기 위해서 에어컨을 꺼야한다. 심지어는 환풍기 소리, 조명소리까지 요란하게 다 녹음되니 최대한 할 수 있는 선에서 잡음을 없애야 했다. 날이 많이 풀렸지만 아직도 너무 더운 날씨. 실내에 갇혀서, 뜨거운 조명 아래에 에어컨도 없이. 그건 너무 힘든 일이었다. 심지어 시나리오 설정상 계절이 겨울이라 배우들은 긴 옷을 입고 있었다. 세상에.
여담이지만, 왜 촬영이나 공연 스태프의 복장은 다들 서로 닮아있는지를 절감했다. 후디에 반바지(이효리 아님)에 힙쌕이나 작은 가방 하나 걸쳐주면 100m에서 봐도 스태프임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더 문제, 비전공 스태프와 나
배우 때문에 NG가 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장비 때문이었다. 모니터는 발열이 너무 심해서 카메라와 연결이 끊기는 문제가 반복되었다. 처음에는 배터리 문제인지, 무선 수송신기의 문제이지 몰랐는데 결국 발열이 문제였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작년에도 그랬는데, 내년에 또 까먹겠지.
녹음이 안 되고, 모니터가 안 되고, 조명이 너무 어둡고, 감독이 구도를 모르고. 사전 준비가 부족했다는 증거였다. 변명을 하자면 한정된 예산이라 리허설을 할 수 있는 하루치의 대관비, 장비대여비가 너무나도 컸다. 물론 현장에서 삐걱거릴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배우들에게 자주 미안했다.
촬영 컷은 대부분 OK였다.
OK가 아닌 컷의 대부분은 장비나 스태프의 문제였다. 연기를 하다가 장비 때문에 NG가 나면 맥이 풀릴 법도 한데, 배우들은 그 와중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역시 그들은 프로였다. 흔들리는 것은 스태프뿐.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그리고 촬영 쉬는시간 마다 막막함이 속수무책으로 밀려들었다. 영화 촬영 현장에 가서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촬영을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전반적으로 현장이 돌아가는 모습을 알고 싶었다.
촬영 기간 동안 식사는 대부분 현장에서 먹었다. 주변 식당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오가는 시간마저 절약해야 했다. 대부분 12시간 이상 현장에 머물렀고, 카메라 돌아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휴식을 가장한 장비 점검 시간과 1시간도 되지 않는 식사시간이 있었다. 근로 기준법과는 아주 거리가 먼 현장이었지만 도저히 거기까지 생각이 닿을 여유가 없었다.
맨땅으로 다이브, 과연 결과는
사전 공부 없이 맨땅에 수건 한 장 깔아놓고 헤딩하는 격이었던 우리는 결국 이 참사가 생길 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정말 극단적으로 상황이 흘러갔다면, 촬영이 중단되고 모든 것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겨우겨우 촬영을 끝내기는 했으니, 딱 생각만큼은 한 셈이다.
이래서 전문가는 다르구나, 전문 배우를 섭외했으니 연기는 문제가 없었고, 조명도 음향도 카메라도 모든 것이 비전문이었으니 그 모든 것이 문제였다.(당연한 소리)
우당탕탕 우여곡절 끝에 어떻게든 어떤 모양이든 결과물은 만들어내야겠지.
과연 작품이라 말할 수 있는 결과물이어야 할 텐데. 힘들지 않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데, 결과물까지 좋지 않을까봐 걱정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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