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동물
어느 날 대형마트에 갔다가 6살 아들이 햄스터를 보고는 관심을 가진다. 관심을 가지고 이리저리 살피더니 이내 사달라고 다리를 붙잡고는 장화 신은 고양이의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들: 아빠~ 나 햄스터 사주라. 응? 응?
아빠 : 안돼. 냄새도 나고 관리하기도 힘들고... 엄마가 좋아하지 않을 거야.
아들: 내가 밥 주고 다 할게. 내가 키울게. 진짜야. 진짜라니까~
(입양 후 두어 번 정도 아들이 밥을 주고는 그 뒤로 매일 내가 주고 있다. ㅠㅠ; )
이렇게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사주고 말았다. 전부터 강아지 한 마리 사서 키우고 싶다던 6학년 큰 아들과 7살 작은 아들의 바람을 저와 아내는 늘 이유를 들어 말리곤 하였습니다. 사실 아내와 저에겐 강아지와 관련한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중 강아지를 키우고 싶지 않은 아련한 기억 하나를 이야기해 본다.
오래전 어느 날 비가 오는 날이었다. 하얀색 강아지 한 마리가 추위에 부들부들 떨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우리 가게에 들어왔다. 털은 듬성듬성 빠지고 엉성해서 보기가 좀 흉하기도 하였고, 하얀 털이 검은색으로 얼룩덜룩할 정도로 지저분하고 배가 쏙 들어간 것으로 보아 왠지 누군가 버린 강아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 오는 날 제 발로 우리 가게에 들어와서는 꼬리를 한없이 숨긴 채 나를 계속 쳐다보는 강아지를 그냥 쫒아 보내기가 미안해서 우선 우유를 사 와서 따뜻하게 하여 그릇에 부어주었다. '히릅히릅'소리를 내며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그렇게 우유를 다 마신 녀석이 한쪽에 턱 하니 누워서는 눈을 껌뻑거리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 잠이 든 녀석을 그냥 한참 바라보다가 아내와 함께 주인을 찾을 며칠만 데리고 있기로 하였다.
그 시절 아내와 작은 월 셋방살이를 하였는데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가 않아 따로 집을 마련해 줄 공간이 없었기에 며칠을 데리고 있기로 한 결정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집에 데리고 가서는 일단 깨끗하게 목욕을 시킨 후 방 한쪽에 이불을 깔고 거처를 마련하여 주었다. 한동안 강아지의 주인을 찾으려 수소문도 해보고 일부러 가게 입구에 매어놓고 주인이 보고 찾아가라고 나름의 방법을 동원하여 보았지만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찾을 수도 없었다. 녀석은 털도 엉성하고 인물도 없는 암컷 강아지였는데 그렇게 지내다 보니 정이 들어 버렸다. 주인을 찾을 수 없었기에 녀석에게 '몽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는 집에서 키우기 시작하였다.
조용하고 순하며 겁이 많은 몽실이는 먹는 것도 소심했고, 다니는 것도 소심했다. 그렇게 지낸 지 한 달이나 되었을까? 어쨌든 함께 지낸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몽실이의 한 쪽 눈이 이상해 보여서 다음 날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하였다. 의사 선생님은 몽실이가 백내장에다가 심장사상충이 있다고 하며 오래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함께 한 정이 그리 길고 많은 날들은 아니었지만 그간의 정이 들었기에 그 이야기를 듣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었다. 결국 그리 오래지 않아 몽실이는 우리에게 이별의 아픔을 남긴 채 우리 곁을 떠났고, 그 아련함은 아직도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동물을 키우는 것에 신중해진다. 분양을 받는 순간 그 동물과 한 가족이 되는 것이며 소통을 하는 한 구성원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물을 좋아하고 키워 보신 분들이라면 공감을 할 것이다. 동물이 아니라 한 가족과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때론 애완동물과 함께하고 소통하며 마음의 위안과 든든함, 그리고 신뢰감 등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게 깊은 관계로 인연을 하며 소통하게 되는 사이가 되기에 애완동물을 입양한다는 것에 대하여 너무 쉬운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렇게 햄스터 한 마리를 입양해 와서는 지금까지 6개월 이상을 함께 살고 있고, 그 이후 집에 7살 아들 때문에 강아지를 입양할 사정이 생겨서 몰티즈(이름은 흰둥이) 한 마리도 식구가 되었다. 그렇게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였던 아이들과의 소통을, 그리고 새로 온 흰둥이와의 소통을 새롭게 시작하니 마음이 좀 더 행복하고 편해짐을 느낀다. 예전의 '몽실이'를 많이 닮아 가끔 아련함이 밀려올 때도 있다. 또 많은 돌봄과 손길이 가는 불편함이 있음에도 그것보다 행복과 만족감이 더 크다. 이런 마음이 소통의 기쁨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