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여린 마린 이를 위한 일기를 통한 변화 : 2. 과거를 들어 현재
건강한 거부를 통해 마음을 다잡는 노력을 하면서도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내 안에 아주 복잡하게 얽매인 것들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들이 밖에서 들어오는 여러 잡다한 말들과 만나서 부단히 나를 괴롭게 했다.
건강한 거부는 자기를 보호하는 '거부'로, 상대에 대한 무시가 아니라 나를 위해 그것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흘러 보냄이 잘 되지 않았다.
문득 왜 그토록 어떤 말이 나에게 비수가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직설적으로 나에게 못할 말을 하는 경우에는 화를 내야겠지만, 어쩌면 별 말 아닌 경우에도 울컥할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예를 들어, 당시 나는 '말랐다'라는 말이 너무 듣기 싫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좀 마른 편이다. 그런데, 그 말랐다는 말이 정말 정말 듣기 싫었다. 그 말을 들은 날이면 기분이 매우 안 좋았다. 사실 말라 보이는데, 말랐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인데...
그런 나의 마음속을 깊이 바라보니, 나에게 '말랐다'의 정의는 곧, '건강하지 못하다' 이는 '스스로 자기 관리하지 못하는' <무능함>으로 받아들였던 것이었다. 나는 그저 '말랐다'는 하는 말을 '너는 무능하다'라고 받아 들었으니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 스스로 이상하게 연결시킨 생각의 꼬리의 꼬리가 나 스스로를 정말 힘들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말을 듣고 기분이 나쁘면 왜 내가 그것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였는지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그런 고민은 나를 이해하게 되고, 별 의미 없는 말들로 흔들리는 일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내가 읽어본 몇몇 심리학 책들에서는 현재를 자기를 바라볼 수 있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언급했다. 그리고 특히, 현재의 나의 변화를 위해서는 자신의 유년시절부터 형성된 성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현재의 나를 위해 하나하나 실타래를 풀어나가기를 권했다.
거부를 하면서도 여전히 한편으로는 어떤 마음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웬일인지 계속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의 유년시절을 돌이켜보니. 나에게 '거부'란 굉장히 익숙하지 못한 일이었다.어릴 적부터 나는 굉장히 수용적인 아이였다. 말 잘 듣고 나의 불만을 잘 표현하지 않는 그런 조용한 아이로 성장해왔다. 그런 아이가 그냥 그대로 '어쩌다 어른'이 된 것이다. 학업으로 정신없이 보내던 시기에는 상대의 의견에 무조건적인 수용을 하면서도 어려움 자체에 대해 생각하지도 못했다.
어른이 되어서 점차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많이 약해진 시기에 더더욱 나는 건강한 거부라는 것을 잘할 수 없었다. 상대에 대한 수용을 통해 나를 만들어갔던 내가 거부는 어색하고 오히려 불편한 것이었다. 이렇게 과거 패턴의 나로서는 잘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패턴을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 덩달아 상대에 묻혀있던 나를 떼어내어 온전한 나를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이제야 내가 되려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나를 억누르기만 했고, 나의 욕구를 인정하지 않았던 과거에서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이 이제야 깨어난 것이다. 그 깨어남으로 인해 불편했던 것들이 생기더라도 내가 단단한 하나의 존재가 되는 것에 포기하지 않겠다. 물론 내 의무를 저버리거나 불친절해지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를 억누르며 행했던 패턴을 더 이상 수행하지 않겠다" (보통 일기 2013년 1월 28일)
건강한 거부를 위한 방법을 찾아가며, 당당한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