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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이 뜨기 전에 Mar 27. 2022

당신의 기억을 살 수 있나요?

7. 당신을 닮은 조각상

안녕하세요? 저는 이수진이라고 해요. 보시다시피 늦깎이 대학생입니다. 컴퓨터 관련 직장 생활하다가 번-아웃이 왔어요.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었어요. 우울증에 몸도 아파왔어요. 그러다가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었기에,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이렇게 다시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아! 대단하세요?... 멋지십니다! 원래는 컴퓨터 전공하셨어요?     


어느새, 이수진은 어린 학생들의 질문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근데, 우리 대학 앞 잔디 정원에 인물 군상이 있잖아요? 거기 중 언니랑 정말 닮은 작품이 있어요. 언니가 이목구비가 뚜렷하셔서 인상에 남았어요. 혹시 보셨어요?     


강의실 뒤편에서 듣고 있던 민서는 멈칫했다.    


아니요. 몰랐어요. 신기하네요. 한번 가봐야겠네요. 그런데, 사실 제가 여기가 처음은 아니거든요. 대학교 시절, 여기 다니는 친구가 있어서 친구 따라 이곳에 살다시피 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 여기를 잘 아시겠네요? 그때 이곳은 어땠어요?    


근데, 제가 좀 기면증이 있어요. 잠을 자면서도 일상적으로 돌아다니기도 하는 병인데, 잠에서 깨면 있었던 일이 기억이 잘 안 나는 거예요... 어릴 적부터 조심해서 잘 지내왔는데, 대학생 때 생활이 불규칙하다 보니, 관리를 잘 못했어요. 한 번은 크게 다칠 뻔했고, 그 이후 부모님께서 여기를 못 오게 하셨어요. 이젠 시간도 많이 지나 그때의 기억이 잘 안 나요    


민서는 그제야 궁금했던 많은 점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 자기가 가졌던 기억들이 가진 무게는 너무나 깊었다.   


자, 이제 작업에 대해 이야기해보시겠어요? 학생들은 대화창에 자유롭게 댓글을 남겨주세요. 상대방에 대한 비방은 삼가 주시고요.. 서로를 위하는 비평이 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아. 네 저는... 처음에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보고, 여성의 위치. 여성의 권위 이런 것을 떠올려봤었어요.    


아. 페미니즘 또 들어가나요?

페미니즘 좀 어려워요. 

빌렌도르프 비너스 고등학생 이후 처음...    


일단 비너스라는 명칭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당시 사회의 미의 기준을 보여주고 있다고 흔히들 알고 있죠.

굳이 비너스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네. 그냥, 여인 정도였으면 어떠했을까?

누가 명명했을지 궁금하네요.        


비너스라는 미의 기준이라 한다면, 선택의 기준에 의해 어떤 것은 미가 될 수 없는 것으로 존재하게 되지요. 하나의 캐논만을 존재하게 합니다. 이런 면이 다분히 권위적이고 다가왔어요. 그리고 아름다운 ‘미’라는 것에 인간적인 여성은 의미가 없어지고 출산을 위한 도구처럼 되어, 여성의 인격은 사라진 그 시대의 조각상에 왜 ‘미’라는 기준을 심어놓은 것일까?     


비너스에 숨겨진 진실? 

출산... 생각하기도 싫다. 

맞아, 얼굴은 아예 없잖아.   

  

그런데, 최근에 다시 이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에 대해 알아보다가 새로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이 상은 스스로 서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크기도 손에 쥘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크기라고 합니다. 이 조각상의 용도에 대해 출산을 앞둔 여성이 주술적 의미로 손에 쥐고, 순산을 빌었을 것이라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삶과 죽음을 가를 수 있는 출산을 앞두고 두려움에 떠는 여성에게 어쩌면 출산을 경험한 여성이 만들어준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처절했던 삶에서 이 여인상은 여성들이 오히려 자신의 삶에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정신적인 힘을 얻는 방법을 나름대로 형성한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회적 구조 때문에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더라도, 그 척박한 삶을 살아가야 했던 여성들의 지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오 이런 반전? 이건 몰랐네요. 

다산을 비는 정도였다고 생각했는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의지였다고 생각하니 좀 짠해지네요...     


위의 맥락에서 보면, 제 작업이 페미니즘적인 작업이 진행될 것이라 예상하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의 의도는 그것은 아닙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하나의 기준에 있어, 그 하나 외에는 어떠한 것도 용납이 안 되는 그런 현상에 희생이 되는 것이 있다면 잘못된 것이고, 또는 하나의 시각으로 대상을 온전히 알 수 없다는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귄위적이고 폭력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의 기준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다양한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이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라는 명칭에서 숨겨진 프레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비너스라는 프레임 때문에 고대시대의 미는 저런 것이었으리라, 다산과 생존이 중요하니,.. 아무 의심도 없었고, 의문도 없이 그렇게 생각하였던 것이지요. 그 시대의 여성은 그저 그런 미를 지녀야 했던 것이라는 한 가지 시각만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오히려 척박한 삶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시대의 진정한 미라고 한다면, 절박한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의지가 아니었을까요? 


프레임을 만드는 자와 프레임 지어지는 대상과 프레임에 빠져드는 자. 우리 모두는 그 누구도 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하나의 선택과 내쳐지는 선택이 있는 프레임을 우리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의 사회가 다양화되었음에도 우리는 다양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성장시킬지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의도로 작업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조형적으로는 니키 드 생팔의 <나나> 시리즈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오히려 유쾌하게 프레임을 비판하고 싶습니다.    


이수진은 발표를 끝내고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학생들은 말없이 박수를 쳤다.

민서는 일어났다. 이수진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발표 잘하셨습니다. 작업이 잘 진행되길 기대하겠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금껏 자신이 기억하는 이수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자신의 욕구를 쫓아가는 그런 모습으로 그녀의 기억이 닫쳐졌었는데, 그저 또 다른 사람을 하나 민서의 마음속에 만들어 놓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프레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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