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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이 뜨기 전에 Mar 27. 2022

당신의 기억을 살 수 있나요?

8. 당신을 닮은 조각상 2

과사 게시판에 한 동안 붙여 있었던 전단지는 어느새 없어졌다. 민서도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근로도 하느라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야 헸다. 더 이상 사랑에 관한 논쟁도 하지 않았다. 친구가 어떤 사랑을 하든지, 그것은 그 친구의 자유였다. 그뿐이었다.    


민서의 가까웠던 친구는 모두 졸업을 했다. 그리고 이수진을 아는 세대라 할 수 있는 친구들은 모두 졸업을 했다. 민서는 복수전공 때문에, 졸업이 한 학기가 더 늦어졌다. 민서는 졸업 작품으로 공동 작품과 개별 작품을 해야 했다. 민서의 팀은 로댕의 지옥의 문에서 조형적 아이디어를 얻어, 인생사를 담아내는 공동작품을 하기로 했다. 


민서는 여자 얼굴과 남자 전신상을 만들어야 했다. 인생을 비유한 문에서 어떤 표정의 여성을 만들어야 할지 몰랐다. 민서는 마음에 드는 표정을 생각하지 못했다. 남자의 표현은 무엇을 할지 많이 고민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고뇌하는 모습, 인생을 당당히 전진하는 모습, 다양한 표정과 자세로 만들었다. 

민서는 진정한 사랑에 감사하는 표정의 남자를 만들기로 했다. 민서는 스스로를 모태 솔로라고 말하며, 여자 친구에 관심도 없다고 늘 말해왔다. 연예를 할 만큼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 더 사실일지도 모른다. 언제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설령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더라도 뒷모습 하나까지 서로에게 배려하는 사랑에 감사하는 한 남자의 모습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민서는 남자 전신상에 혼을 담았다. 며칠을 밤낮없이 매진했다. 기말고사까지 겹쳐서 시간의 여유가 많지 않았다.     


여자 얼굴은 어떻게 할지 아직 생각도 못했는데, 전시 오픈이 이틀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민서는 손이 가는 대로 한 여인을 만들었다.     

졸업전시에 오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여자 친구를 모델로 했니? 이건 너고?    


그냥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조금씩 치매로 인지능력이 불안정해지시는 어머니를 두고 민서는 여자 친구를 조만간 꼭 데리고 인사드리겠다고 말했다.   

 

민서는 자신의 작품을 물끄러미 보다가 내심 놀랐다. 누구를 꼭 닮고 말았다. 누구를 딱히 생각하고 만들지 않았다 생각했는데, 자신의 마음을 자신에게 들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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