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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이 뜨기 전에 Mar 27. 2022

당신의 기억을 살 수 있나요?

10. 지금 이 순간의

민서는 유학시절 만든 작품으로 서울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오랜만이야. 전시에 와주어서 고마워.    


어. 진짜 오랜만이네. 유학 갔다 온 다음에 학교에 출강한다고 들었어.    

 

응     


민서야.. 나 너에게 충고를 좀 구하고 싶어.    


뭘? 너는 예나 지금이나, 뜬금없는 것은 똑같네. 갑자기 돈 빌려 달라하지 않냐, 시험 보는데 답을 보여 달라고 하더니, 이번에 또 뭐냐? 몇 년 만에 만나서?    


민서야? 난 좀 심각한데, 때 마침 너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어.    


뭔데? 결혼해서 잘 사는 줄 알았는데, 무슨 문제 있어?    


아내가 갑자기 여러 책을 주더니 읽어보라 하더라. 옛날의 네가 준 사랑의 기술 책도 있어...    


어~ 잘됐네, 그때 읽었으니까...    


아니... 나 그때 안 읽었어. 너에게 받는 즉시 반납했다.    


뭐라고? 널 믿은 내가 잘못이지... 근데 아내가 왜 너에게 그 책을 읽어보라고 해?

   

내가 문제가 많다나... 뭐가 딱히 뭘 문제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그냥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 뭐 나만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내에게는 참기 힘든가 봐. 과거부터 알게 모르게 습관이 된 것이 어떤 문제가 된 건지... 그런데, 그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기억도 잘 안나는 과거의 습관을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지 모르겠어.      


민서는 절망하는 그 친구가 안타까웠다. 그 친구를 그때, 그냥 내버려 둔 것이 잘못처럼 느껴졌다.    

 

잘 고민해봐. 고칠 수 있을 거야. 그때, 고쳤더라면 더 좋았을 거지만...    


친구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어머니가 오신다는 전화를 받았다. 거동이 불편하시니 차에서 기다리시라는 말을 하고 나가려 하는데, 벌써 어떤 사람과 같이 들어오시는 모습이 유리문 너머로 보였다. 잘 아는 사이처럼 다정했는데, 가까이 가보니 그 사람은 이수진이었다.    


아니... 어머니 기다리시면 제가 나가려 했는데요...


아니다. 마침 이 아가씨가 나를 잡아주네...    


안녕하세요? 교수님. 이 분이 어머니셨군요. 근데 저를 잘 아신다고 하시네요?    


이수진은 자신을 어떻게 아시는지 궁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계속 어머니의 팔을 잡아주었다. 전시를 관람하는 어머니는 내내 이수진의 손을 꼭 잡고 계셨다.         


어머니는 나가시면서, 이번에는 민서의 손을 꼭 잡고 속삭였다.  


민서야. 내가 사람을 잘못 봤나 봐. 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아. 왜 네 여자 친구라고 했던 사람. 그런데 헤어지길 잘했다. 이 아가씨가 더 좋은 것 같아! 잘해봐라...    


어머니 본인께서는 작은 소리로 속삭이시는 것으로 말씀하시는 것이었지만, 전시장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큰 소리로 들렸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초롱초롱한 눈으로 민서를 바라보며 웃으셨다.    


그 웃음에 민서도 웃었고, 이수진도 웃었다.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기억 속에 존재했던 이수진이 아닌, 지금의 이수진이 민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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