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운다. 딸아이의 말을 듣고 울고 그린 그림을 보고 울고 자는 모습을 보고 운다. 책을 읽다가 울고 누군가의 메시지에 울고 뉴스를 보다 운다. 하늘을 보다 울고 비가 와서 울고 달이 예뻐서 운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울었을까? 원래 잘 우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아이 낳고 눈물이 많아졌다는 말을 하는 엄마들이 많은 것처럼 나도 그래서일까?
눈치 안 보고 당당하게 우는 나를 발견하고 보니 호르몬의 변화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나 이제 울어도 괜찮으니까! 시원하게 울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까! 나 떳떳하게 내 집에서 울고 있는 것이다.
부모님과 살 때는 잘 울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울고 싶은 순간은 많았지만 잘 참았다. 특히 아빠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 앞에서 우는 딸의 모습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인데 그 정상적인 아빠와 딸들은 서로 울고 웃는 것이 자연스러웠겠지만 난 울고 웃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아이였다. 내가 울고 싶은 이유는 아빠 때문이었으니까 그래서 난 아빠 앞에서 울지 않았다.
대신 몰래 울었다. 자면서 울고 걷다가 울고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서 꺼이꺼이 울었다. 그러니 눈물의 양으로 따지자면 결혼해서 아이 낳고 흘린 눈물보다 어린 시절 남몰래 닦아낸 눈물이 훨씬 많았구나 싶다.
또 새로운 계절을 앞두고 지나간 계절들을 넘겨본다. 책장 넘기듯 한 장 한 장. 다음 페이지가 없을 것 같던 시간들, 이대로 끝이라면 내 이야기는 왜 쓰였을까? 서글펐던 시간들이 지나간다. 한 계절 한 계절이 지난다.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끝나는지 계절의 시작과 끝을 다 알지 못하지만 내 코끝에서, 내 품 안으로 스며드는 계절의 향기와 감촉을 알 뿐이다. 어제와 다른 햇살과 바람. 그 아래 오늘도 돋아난 돌틈새 풀꽃 같은 내가 있다. 이 작고 작은 내가 저 드높은 하늘 아래 고개 들고 핀 것이 감격스럽다. 운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가 어떻게 지나왔는지 생각한다. 도저히 모르겠다. 나는 돌틈 사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많은 계절을 보냈다. 나는 하루하루 흔들리고 꺾이며 아무것도 쌓은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투자를 하고 저축을 하고 아끼고 숨기고 모으며 산다고 한다. 나는 아낄 것도 숨길 것도 모을 것도 없다. 울고 싶어 진다. 불안하고 두렵다.
내가 이 땅에 아무것도 쌓아둔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똑. 떨어지는 눈물을 본다. 아! 나는 딱 하나. 저 하늘에 강 같은 눈물을 쌓았다. 슬픔과 아픔을 아끼고 숨기며 눈물을 모았다. 아주 커다란 김장독을 떠올려본다. 든든한 김장독처럼 내 눈물이 담긴 눈물독도 따뜻하고 넉넉하게 잘 익어가고 있겠지.
안타깝게 생명을 잃은 사람, 아무도 모르게 죽어갔던 사람, 곧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소식을 들으며 나는 내 눈물독을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참고 견디며 흘렸던 그 눈물들. 이제 저 사람들을 위해 내려주세요. 위로의 눈물, 살리는 눈물, 모든 것을 씻어내리는 깨끗한 눈물을 하늘에서 퍼부어주세요. 이제껏 모아둔 내 눈물독을 깨뜨려 사랑으로 흘려보내주세요.
내가 아끼고 숨기고 모은 것 단 하나. 눈물. 이 눈물독이 필요한 사람, 필요한 곳에 깨뜨려지기를 바란다. 오직 이 마음 하나로 울고 글을 쓰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