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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림 Sep 14. 2023

크기가 아니라 존재

생각 3. 무엇이 문제일까?


파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때가 있고 순두부 끓어오르듯 뭉게뭉게 구름 가득한 하늘일 때가 있다. 구름 한 점 있는 하늘과 한 점 없는 하늘은 한 점 차이일 뿐인데 그 하늘 아래 나는, 다른 날씨를 느낀다.


우리 딸들은 아기 때부터 머리카락이 늦게 자랐다. 여섯 살인 첫째는 몇 달 전, 태어나 처음 미용실을 다녀왔고 둘째는 여전히 또래에 비해 빈약한 숱을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세 살 때까지는 머리를 묶어줄 수 없어 굉장히 조바심이 났었는데 네 살이 된 지금은 제법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게 됐다. 머리카락 한올도 얼마나 귀한지 한 올일지라도 있냐 없냐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무더운 여름날 바람 한 점 부는 것과 바람 한 점 없는 것도 그렇다. 밤하늘에 홀로 환하게 뜬 달도 마찬가지다.  달 하나 뜬 밤하늘과 달 없는 밤하늘의 차이가 우리 걸어가는 밤길까지 바꾼다. 달은 오직 제 하나일 뿐인데 비추는 빛은 깜깜한 어둠도 몰아내는 것이다.


작은 믿음이라도 내 마음밭에 한 톨 심겨있는 것과 한 톨 없는 것은 정말 다르다. 내 작은 꿈과 소망도 한 줄 적힌 일기장과 아무것도 쓰지 않은 일기장은 다른 것이다. 작은 믿음 한 톨이 자라고 또 자라면 큰 믿음이 된다. 작은 꿈과 작은 소망 한 줄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면 이루어진 꿈과 소망이 된다.


한 점의 구름과 한 점의 바람

머리카락 한올

달 하나

믿음 한 톨

꿈과 소망 한 줄


크기가 아니라 존재다.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다. 우리는 자꾸만 크기를 잰다. 너보다 내가 더 크고 많기를 바란다. 결국에 우린 사람도 크기로 보고 만다. 내 자식이 더 큰 곳에 가기를, 더 많이 가지길 바란다. 그 욕심이 단하나로 존재하는 것들까지 죽여버리고 있다. 내가 더 커지기 위해서, 더 많이 얻기 위해서 단 하나의 존재들을 밟고 산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는 사랑 앞에 존재하는 우리는, 그처럼 살아야 한다. 크기가 아니라 존재다.


나도 단 하나의 존재고 너도 그렇다. 그러니 달라도 단 하나의 존재들을 사랑하기로 한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는 그 사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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