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뒤에 엄마가 뒤따라오고 있음을 안다. 엄마를 믿기에 가고 싶은 곳을 향해 주저함 없이 나아간다.앞으로 달려가는 것이 무섭지 않다.
나는 아이의 뒤를 따른다.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즐거워 보인다. 넘어질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내가 지켜보고 있으니 괜찮다. 나는 언제든지 아이를 도울 준비가 되어있고, 아이가 달려가고 있는 곳이 크게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가 넘어져서 운다 해도 나는 아이를 달랠 수 있고, 작은 넘어짐의 반복이 내 아이를 강하게 할 것을 믿는다.
그런데 왜 나는,
이제는 뒷걸음질을 멈추고 앞으로 달려 나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내 삶의 변화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왜 나는 뛰지 못하는 걸까? 왜 나는 자꾸만 뒤돌아보는 걸까?
아이는 손에 가진 것 하나 없이 제 몸 하나만으로 가볍고 힘차게 뛴다. 곁에 엄마가 있으니 눈치 볼 것도 없다.
나는 몸이 무겁다. 내 주머니는 고집과 욕심으로 가득 찼고 내 등에 짐은 딱 내 삶만큼 무겁기만 하다. 그래, 나는달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이미 한껏 무거운데 뛸 수가 없다.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보다 의미 없는 그림자들을 신경 쓰느라 두렵다.
엄마 앞에서 주저함 없이 달리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나의 뒷모습을 본다. 그런내 등 뒤에서 안타까워하는 사랑을,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하나밖에 없던 소중한 가방의 똑딱이 단추가 길바닥에 떨어진 날. 그 비참함을 지금도 기억한다. 처음으로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을 선택할 수 있었던 가방이었다. 나는 그 가방을 가졌을 때 작은 자신감을 얻었다. 나도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
그 자신감이 단추가 되어 떨어졌을 때 나는 내가 그 가방이었다는 걸깨달았다. 아무리 좋은 가방인척 해도 결국은 금방 망가지고 마는 부실한 가방이 내 원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는, 아이의 뒤를 따르는 엄마인 나는 가방 없이도 외출을 잘만 한다. 에코백도 좋고 장바구니도 좋고 비닐봉지여도 상관없다. 내가 들기에 편하면 그만이다. 누가 뭐라 해도 괜찮다. 내 손에 선택받은 그날의 가방은 그렇게 쓰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가여운 것은 단추가 떨어진 낡은 가방이 아니라 아무것도 담을 수 없이 잡다한 것으로 꽉 찬 가방이다. 내 마음과 삶이 잡다한 것으로 꽉 차 앞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것. 그것이 가장 부끄러운 거다.
주머니를 비우고 등 뒤에 짐을 내려놓자. 가방을 탈탈 털어 깨끗하게 정리하자.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돕는 사랑. 그 앞에서 나는 뒤돌아보지 말고 앞을 향해뛰기만 하면 된다. 고라니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우리 둘째와 같이, 고마 신나게 뛰어볼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