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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귤 Oct 08. 2023

엄마는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사람이야

생각 5. 어떤 사람인가?


명절 연휴에 동생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중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았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지, 그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물어왔다. 본인 대학 과제로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 필요하다며 내게도, 조카인 내 딸들(4세, 6세)에게도 이 심오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6세 첫째 하리의 대답이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여기 최초 공개한다.


하리의 삶에서 중요한 사람으로 지목된 사람은 엄마, 아빠, 동생, 가족들, 친구, 선생님 등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엄마는 어떤 사람인지를 동생이 물었다고 한다.


"하리야 엄마는 왜 중요한 사람이야? 엄마는 하리한테 어떤 사람이야?"

"엄마는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사람이야."


하리의 대답을 전해 듣고 나야말로 기분이 좋아졌다. 하리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서 고마웠다. 내가 하리를 기쁘게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삶의 이유를 확증해 주는 것 같았다.


기분 좋아지게 하는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좋다. 정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우리 동네에는 개를 키우는 사람이 참 많은 편이다. 저마다 매력이 다른 개처럼 그들의 주인 또한 저마다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본다. 자기 개만 생각하는 사람, 개한테 끌려가는 사람, 개를 이끄는 사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 등. 부모도 비슷하다. 자기 아이만 생각하는 부모, 아이한테 끌려가는 부모, 아이를 지도하는 부모,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부모.


어느 날 둘째와 산책하는 길에 덩치가 엄청 큰 개와 그 주인을 만난 적이 있다. 혜리는 맞은편 저 멀리서 걸어오는 큰 개를 보고 손가락을 번쩍 들어 "멍멍이다!"라며  흥분한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개 주인도 저 맞은편에 보이는 어디로 튈지 모를 작은 아이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서로 점점 가까워졌다. 주인은 멈춰 섰다. 리드줄을 두 손으로 꽉 붙잡은 채 우리가 먼저 지나가도록 배려해 주었다. 아이랑 내가 지나가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한걸음을 떼던 멋있는 개와 멋있는 주인. 잘 자란 자녀와 잘 키운 부모의 모습이었다. 멋있었다. 기분 좋아지게 하는 사람이다.


하원시간. 유치원 버스가 멈춰 섰다. 우리 딸도 내리고 아이들 몇 명이 내렸는데 한 아이가 아직 못 내리고 있었다. 보호자가 아직 안 왔기 때문이다. 차량도우미 선생님이 아이 손을 잡고 문 앞에서 보호자를 기다리고 있었고, 버스에 타고 있던 아이들은 잠시 지루한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도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유치원 버스문이 열린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안내면 진다 가위바위보! 야~~ 내가 이겼다! 와!!!"

버스에 앉아있던 나머지 몇 명의 아이들과 버스 기사님의 가위바위보 소리였다. 평소 과묵하게 목례만 주고받은 사이라 기사님의 처음 보는 해맑은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났다. 기사님의 입에서 나온 "안내면 진다"와 "와 내가 이겼다!"는 말은 더욱이 웃음이 났는데, 유치하고 귀여운 모습이 유치원생 아이들과 아주 꼭 똑같아서였다. 기다리는 아이들이 지겨울까 봐, 아이들과 같이 게임을 하며 짧지만 지루한 시간을 기분 좋은 시간으로 바꾸어주신 것이다. 기사님의 해맑고 유치한 모습이 멋있었다. 기분 좋아지게 하는 사람이다.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학부모 상담 질문지 만족도 조사서적어 내려가다, '키즈노트에 게시물을 올리는 주기'와 '원에 건의하고 싶은 내용'에 대한 질문에서 멈칫했다. 꽤 오래 생각하고 고민하다 내 마음을 썼다. 자녀를 기분 좋아지게 하는 엄마로서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활동과 관련하여 원에서 제공해 주기를 바라는 자료는 무엇입니까?


매일의 활동모습과 아이의 사진보다, 부모가 함께 지도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에 대해 소통하는 것이 우선되는 자료가 제공되는 것이 좋을 같아요.


원에 건의하고 싶은 내용을 아래에 자유롭게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키즈노트뿐 아니라, 선생님 개인 연락처로 소통하고 있는데 선생님, 윈장님의 사생활 보장과 교권보호 등을 위해 개인 연락처를 공개하지 않고, 개인 연락처로 부모와 소통하지 않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키즈노트에 사진을 올리는 횟수와 주기 등도 매일이 아니라 사진 찍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집중될 수 있도록 줄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저희 아이들도 소중하지만 이 소중한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더 귀한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기분 좋아지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위와 같이 말한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요즘, 마음이 아픈 선생님들의 기분을 좋아지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솔직히 나는 누군가의 기분을 좋아지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 능력을 발휘해서도 안된다. 다만 만나는 사람에게 기분 좋은 말을, 기분 좋은 미소를, 기분 좋은 글을 남길 수 있을 뿐이다.


나를 기뻐해주는 이가 있다. 나를 사랑해 주는 이가 있다. 그러니 나는 기쁨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그래서 기쁨과 사랑을 남기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내 삶의 이유다. 기쁨과 사랑이  나뉘어 흘러 이 세상을 기쁘게 하는 기분 좋은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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