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있잖아. 하리야. 스케치북에 무지개색을 칠하고 그 위에 검은색으로 다시 칠하면 무지개색이 안보이겠지? 그런데 이쑤시개 같은 걸로 검은색을 긁으면 무지개색이 다시 나타난다. 신기하지? 그것처럼 이 밤이 지나면 밝은 아침이 꼭 오는 거야.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두려움과 불안.
나는 이 녀석들과 오랜 시간 함께 하고 있다. 밤이 찾아오듯 자연스럽게 왔다 또 어느새 사라진다. 내 안에 꽤 오래 머물러서 벌벌 떨 때도,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널브러지고 말 때도 있다.
두려움과 불안이 강박적 사고와 강박적 행동을 낳았는데 모순되게도 그 시작은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불안한 생각이 떠올라 그 생각대로 벌어질 일을 막고자 나도 모르게 자꾸만 여러 번 확인을 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내가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발생할 일들이 생각나 불안해져서 문이 닫혔는지를 세 번씩 확인한다거나, 바지 지퍼를 올릴 때마다 내가 지퍼 올리는 것을 깜박해서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퍼를 몇 번이고 매만지게 되거나 하는, 아침에 집을 나선 남편과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다거나, 누군가와 오랜 시간 연락이 닿지 않으면 부정적인 생각을 먼저 한다거나 하는 식의 모습도 내 안에 있다.
너무너무 괴로워서 진지하게 고민해 봤다. 아니, 사실은 매 순간 힘들어서 '도대체 왜 그럴까?'를 수도 없이 생각한다. 그러다 한 날은 일곱 살쯤의 어린 나를 발견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울고 있는 나를. 일하러 간 부모님을 기다리며 무서워하던 나를. 하도 크게 울어서 옆집 아저씨가 왜 우냐고 묻던 그날의 나를 떠올리게 됐다. 그 때문에 내가 불안하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내 두려움의 뿌리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나는 어떨 때 가장 큰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는지 말이다.
혼자라고 느껴질 때, '곧', '결국엔' '혼자가 될 나'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로 인해, 내가 내린 결정으로 인해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상상하며 불안해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그때 그 말을 해서, 내가 그 사람에게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거야.' 하는 식으로.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것을, 사람들에게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결국 그 또한 내가 혼자가 될까 봐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강박증상은 더 큰 두려움과 불안을 몰고 온다. 삶을 피곤하게 만든다. 근본적 해결이 아니다. 검은색에 속고 있는 것이다. 본디 내 삶의 스케치북을 채운 색은 검은색이 아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무지개색이었다. 아름다운 색깔 위에 두려움과 불안의 검은색을 칠해버렸다. 나는 이내 보기 좋게 속았다. 내 삶은 어둠이라고, 나는 망했다고.
뾰족한 것으로 긁어내면 검은색은 사라지고 원래 색이 드러난다. 어둠은 물러가고 빛이 온다. 내 삶은 무엇으로 긁어내나? 두려움과 불안은 어떻게 물러가나? 치료도 필요하고 약도 필요하고 명상도 좋고 갖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어둠을 내쫓는 근본적인 해결은 빛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두려움을 내쫓는 건 사랑이다.
믿음, 소망, 사랑. 믿고 소망하고 사랑하는 것. 그 안에 거하는 것. 검은색에 속지 않는 것. 날마다 긁어내는 것. 그래서 반짝반짝 빛을 내는 것. 빛으로 사는 것. 여전히 약하지만 내가 아주 엎드러지지 않는 이유, 여전히 두렵고 불안하지만 매일 아침 힘 있게 돋아나는 해처럼 사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