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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귤 Dec 26. 2023

새 다이어리를 쓰다가

성탄절을 보내며


하리가 스케치북을 들고 와 나에게 펼쳐 보인다.


"엄마. 더 이상 그릴 데가 없어."


새것으로 바꿔달라는 말인 줄 알지만


"여기 옆에 그려도 되겠는데?"


충분히 더 그리고도 남을 하얀 빈 부분들을 찾아낸다.


"아하하 그러네. 알겠어. 다 그리면 바꿔줘야 해? 알겠지?"


하고는 후다닥 뛰어가더니 곧 다시 나를 부른다.


"하리야. 여기 조금 그리고 다음장으로 넘기고 또 저기 조금 그리다 넘기고 그러면 종이가 너무 아깝잖아."


"이게 마음에 안 들어. 다시 그리고 싶어."


"하리 네 마음에 들도록 예쁘게 그리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조금 실수했다고 스케치북으로 바꿀 수는 없어. 삐뚤삐뚤해도 괜찮고 잘 못 그려도 괜찮아. 그것도 다 모으면 하리만의 작품이 되는 거야."


하리한테 말해놓고 속으로 깜짝 놀랐다.


'어쩜 이리 나를 쏙 빼닮았을까?'






새 공책을 쓰다가 무언가 하나 마음에 안 들면 그 페이지를 꼭 뜯어내야지만 속이 시원하곤 했다. 그렇게 몇 페이지 끄적이다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작동하면 바로 뜯어내버렸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공책은 앙상하게 얇아져있다. 처음 샀을 때와 달리 볼품없게 변하고만 공책을 보고 있자니  당장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새 공책이 사고 싶어 진다.


어릴 때부터 일기장이나 다이어리 쓰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자주 '새것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으로 괴로웠다. 사실 이 괴로움은 내 삶의 괴로움이다. 내 삶에 대한 나의 태도이다. 실수한 나, 완벽하지 않은 나, 부족한 나를 가차 없이 버리고 싶은 것이다. 다른 사람의 연약함 앞에선 진심으로 위로하고 다독이다가도 나에게는 종이 뜯어내듯 조금의 기회도 주지 않는다. 나는 나를 미워하고 비판하고 자책한다. 그 결과 얇아진 공책처럼 야윈 나를 발견한다.  모습은 내가 꿈꾸던 내가 아니다. 나는 새것이 되고 싶어 진다. 새 삶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라고 불평한다. 빈틈없이 꽉꽉 채워진 두꺼운 공책, 완벽하게 정리된 공책, 자랑할만한 내용들로 가득 찬 공책. 나는 그런 공책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뜯어낸다고 새것이 되는 게 아니더라. 또 다른 모습이 될 뿐. 뜯고 뜯어서 내가 보여주고픈 모습들만 남긴다고 해서 인정받는 것도 아니었다. 삶의 만족과 행복은 뜯어내버릴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뜯어버리고 싶은 그 한 장 한 장까지 모으고 모아 나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때라는 것을. 그때 내 삶은 새로운 모양이 된다는 것을. 내가 내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까지도 받아들이고 품고 갈 때 사랑이 시작된다는 것을. 완벽한 모습일  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내 약함이 드러날 때 누군가를 진짜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아주 느리고 서툴게 배워가는 중이다. 부족하고 연약하며 부끄러운 매일의 삶 속에서.


괜찮다. 그 모습까지도.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 예수를 생각한다. 그 가치와 존엄성이 구유에서 더 빛을 발하는  것처럼.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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