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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림 Mar 10. 2022

고요한 시간에 던지는 질문

내가 만든 작은 프로젝트

똑같은 하루를 살다 보면 어느 날은 훌쩍 떠나고 싶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혼자 있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누군가를 만나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누구를 만나고 싶은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잠시 숨어있던 외로운 마음, 공허한 마음, 불안한 마음들이 고요한 시간이 되면 빼꼼 밖으로 나옵니다.

조용하고 잠잠한 시간. 몸은 가만히 쉬고 싶은데 마음은 채워지길 원하는 것 같아 괜히 야식을 먹어도 보고 브이도 켜보고 SNS도 해봅니다. 하지만 다 채워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씁쓸해지죠.

저걸 먹으면, 저걸 사면, 저걸 하면, 저런 것들로 채우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마음은 참 똑똑해서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나의 노래, 나의 소망, 나의 꿈, 진짜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면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빈 마음을 오롯이 '나'로 채워보기로 결심하고 나니

누구를 만나고 싶은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조금  것 같습니다.

다른 이를 찾아 나서기 전에 나를 먼저 만나야 한다는 것을.

내 마음과 생각이 머무르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마음속에 엎드려있던 꿈과 사랑을, 그리고 상처와 아픔까지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꾸준히 내 생각을 글로 남기는 일을 하고 있는데 좀 더 활발히, 가까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유명하지도 않고 영향력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작아지는 순간들을 자주 마주치곤 했습니다.

아침마다 밤마다 엎드려 고민했습니다.

'내 삶이 완성형은 아니지만 하나씩 채워가면서 자라 간다면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 내 마음과 같은 한 사람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면 그걸로 됐어.' 런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오를 때면 다시 가슴이 뛰었습니다.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나누고 습니다.

혼자 생각만 하고 만다면 빈 마음 달래려 먹은 야식처럼 그 끝엔 후회만 남겠죠. 그러나 같이 나누면 풍성한 식사시간이 될 것입니다.

일찍 일어나 늦게 누우며 종일 수고하지만 나를 돌볼 시간과 여유는 만들지 못한 채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진 않나요?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는 나를 만나는 고요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나 하루를 돌아보는 밤. 언제든 좋아요. 고요한 시간을 찾아 나를 생각하고, 나의 마음을 살펴보길 원합니다.

제가 던지는 질문을 가지고 우리 같이 생각하고 이야기 나누면 어떨까요?

댓글도 좋고 일기장에도 좋고 마음속에 남기기만 해도 좋아요. 어디든 한 줄이라도 남겨보세요. 글은 해 같아서 남기면 빛이 나고 언젠가 힘차게 돋아날 거거든요.




저는 오늘 첫째 하리를 통해 첫 질문을 생각해냈습니다.

올해 다섯 살이 된 하리는 유치원을 갑니다.

아침 등원 통학버스 시간은 8시 37분입니다. 하원 시간은 4시 47분이고요. 그런데 세상에 제가 하원 시간인 47분을 등원 시간으로 착각했다는 거 아닙니까! 37분에 버스는 떠났고 47분으로 착각하고 나온 저는 두 아이와 덩그러니 아무도 없는 정류장에 남았죠.

잠시 후 9시 15분이면 둘째 혜리도 어린이집 버스를 타야 하는데, 하리는 어떻게 데려다줘야 하나 고민 끝에 어린이집 원장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린이집 가는 길에 유치원을 지나거든요. 저와 하리를 태워줄 수 있는지 조심스레 여쭤봤더니 흔쾌히 괜찮다고 해주셨어요! 덕분에 편하고 안전하게 하리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걸어왔습니다.


집안일도 계획을 세워 로봇처럼 해내는 제가, 몇 번이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꼼꼼하다 못해 피곤한 제가 오늘 또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을 보내고 밀린 집안일과 여러 가지 일들을 하기로 계획해뒀는데 틀어져버렸다는 생각에 짜증도 나고, 어린이집 원장님께 엉성한 엄마의 모습을 보인 것이 민망하기도 했어요.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무척 예민해지고 당황하는 저인데 그런데 말입니다 오늘은 그 속에서 이상한 즐거움을 맛봤다고나 할까요.

유치원 버스를 놓쳤지만 누군가의 도움으로,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위기를 넘긴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걸으며 잠시 쉬어갈 수 있었던 것도 좋았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집에서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며 어질러진 집을 치우고 있었을 거예요.

'이 시간 이곳의 풍경은 이렇구나' 생각하며 걷다 보니 얼마 전 출산한 언니가 떠올랐습니다. 전화를 걸어 듣고 싶었던 말들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그 잠깐의 시간이 꼭 오늘 날씨처럼 포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오늘 하루 내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았지만 때론 이렇게 흘러가도 괜찮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계획대로였다면 앞으로도 어린이집 버스를 타볼 일은 없었을 것이고, 유치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에서 만난 따스한 날씨와 풍경들은 못 보고 지나쳤겠죠. 커튼 친 컴컴한 집에서 어제와 똑같이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했을 거예요. 궁금했던 언니의 안부도 더 밀리고 밀려 오늘 들어야 할 말을 영영 듣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여러분도 오늘 내 생각, 나의 계획과 달리 일어난 일이 있었나요? 어이없는 실수를 했나요? 그런데 생각보다 괜찮지 않았나요?

고요한 시간에 제가 던지는 첫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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