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규림 May 14. 2022

순간마다 새롭고 감탄하며 표현할 수 있는 비결

아홉 번째 질문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그런지 두 딸 모두 감기에 걸린 것 같습니다. 첫째는 어제 새벽 코가 막혀서 깨고, 둘째는 며칠 째 누런 콧물을 대롱대롱 달고 다니는 중이거든요.

오늘 병원을 가지 않으면 주말 동안 더 심해져 등원하는 새 한 주가 걱정될 것이 뻔합니다.

오늘은 남편이 출근하는 주말이라 혼자 두 아이를 데리고 걸어서 병원에 갈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지만, 지체할 일이 아니기에 이른 아침부터 병원 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5살 첫째에게는 집을 나서기 전부터 "오늘은 아빠가 없는 날이라서 엄마랑 하리랑 혜리랑 셋이서 병원에 갈 거야. 혜리는 유모차를 탈거고 하리는 엄마랑 걸어가야 돼. 안아달라고 하면 안 되는 거야. 병원 잘 갔다 오면 시크릿 쥬쥬 색칠공부 사줄게."라고 신신당부를 했죠.


한 손은 유모차를 끌고 한 손은 첫째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둘째는 자꾸만 일어서서 뒤를 돌아보고, 돌아가는 바퀴를 손으로 만지고, 마주 걸어오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드느라 바빴습니다.

첫째는 출발한 지 몇 분도 안돼서 쉬었다 가자고 했다가, 너무 힘들다고 주저앉았다가, 떨어진 꽃잎을 주워 제게 건넸다가, 유모차를 자기가 끌겠다고 고집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아주 정신이 없었어요. 오늘따라 이 길은 왜 이리도 멀게만 느껴지는지, 이제 겨우 오전이라는 사실에 놀라며 아이들과 함께 걸음을 이어나갔죠.


신호등 앞에 서 있는데 옹기종기 모여있는 민들레 여러 송이를 발견했습니다.

신호 기다리는 것이 지겨울까 봐 "하리야. 저기 민들레들이 모여있네. 가서 인사해봐." 그랬더니

"민들레야 안녕. 잘 잤어? 이것 봐라~~ 내 손톱 예쁘지?" 하며 첫째가 열 손가락을 쫙 다 펴서 민들레들한테 보여줍니다.

평소에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손톱에 붙이는 스티커'를 사서 붙여줬는데, 아니 글쎄 그걸 민들레한테 자랑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찌나 엉뚱하고 귀여운지 혼자 마스크 뒤로 소리 내어 웃었어요.


이번에는 또래 친구를 마주쳤습니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 서로 "안녕~" 소리 내어 인사를 합니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해맑은 모습에 저도, 상대 어머니도 처음 보는 사이이지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지나갔습니다.

제법 걸었는데 아직도 병원까지는 좀 남았습니다.

투정을 부리긴 해도 잘 걷고 있는 첫째가 대견하기도 하고 이대로 끝까지 잘 가야 한다는 걱정에, 제가 입을 열었습니다. 급할 때 나온다는 저만의 이상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리야! 신데렐라도 많이 걸어갔던 거 알아? 변신해서 드레스 입고 파티에 갈 때 엄청 많이 걸어갔대."

'아, 아닌가? 파티장 갈 때 호박마차 타고 간 거 같은데?'

제가 말해놓고도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티 내지 않았죠. 첫째를 힐끔 쳐다보니 "그래?" 한마디 하고선 별 말이 없습니다. 하하.


그렇게 이상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무사히 진료를 받고 약을 타고 약속했던 색칠공부 책을 사서 돌아왔답니다.

걷고 멈추고, 말하고 웃고, 인사하고 노래하며 그렇게 집으로 왔습니다.

아이들이 잠든 밤. 혼자 식탁에 앉아 글을 쓰는 지금.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어쩐지 웃고 있습니다.

웃는다는 것은 얼굴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아이들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웃는 것. 그게 바로 진짜 웃음이고 그때 정말 기쁘고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오늘도 전 아이에게서 배웠습니다.

매일 똑같은 하루, 매일 같은 길에서,

순간마다 새롭고, 순간마다 감탄하고, 순간마다 표현할 수 있는 비결을요.

꽃들에게, 처음 보는 친구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는 것.

뜨거운 햇빛 아래서도 노래를 부르고, 울다가도 작은 사탕 한 알에 웃음이 나는 것은,

단순해서가 아니라, 어려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돌같이 굳은 마음이 아니라 꽃잎처럼 연한 마음이라서 꽃을 보고도 내 이야기를 꺼내고, 저기 멀리 생전 처음 보는 친구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굳은 어른들도 작은 아이와 눈이 마주치면 싱긋 웃어 보이는 게 아닐까요?

아이를 볼 땐 마음으로 보니까요.

일을 할 때, 돈을  때, 같은 어른을 대할 때도 마음으로 본다면 우리도 아이처럼 매 순간 새롭고 작은 것에도 감탄하며 용기 내어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홉 번째 질문입니다.

오늘도 그저 그런 평범한 하루를 보내셨나요?

여러분은 어떤 '내일'을 마주하고 싶나요?

저는 돌 같은 저의 마음을 잘게 잘게 깨부수고 꽃잎처럼 연한 마음이 되어 '새로운 내일'을 만나고 싶어요.

작은 것에도 감탄하고 용기 있는 표현들을 하면서요.



"


작가의 이전글 어떤 뷰를 원하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