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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림 Jun 07. 2022

내가 챙겨 먹는 영양제는

아이의 말

잠들기 전 누워서 하리랑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참 좋다.

나는 주로 하리의 유치원 생활이 궁금해서 은근히 떠보는 질문을 하거나, 오늘 하루 중 하리에게 미안했던 일을 꺼내 사과를 한다.

하리는 자기가 직접 만들었다며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갑자기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기도, 나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사랑을 표현하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공주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길래 몇 번이고 해준 적 있지만 마치 처음인 것처럼 신데렐라 이야기와 백설공주 이야기를 들려줬다.

"왕자님이랑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대~"

"엄마도 아빠랑 결혼했지?"

"응. 결혼했지."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했어?"

"(당황)어.. 엄마랑 아빠랑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지. 그리고 하리랑 혜리 만나려고 결혼한 거야."

"진짜? 나 행복해."

하리가 옆으로 몸을 돌려 나를 꽉 안아줬다.

평소에 "하리 덕분에 엄마 행복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하리 입에서 행복하다는 말을 직접 들으니 마음이 벅찼다.

'다섯 살이 어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이런 감정을 정말 느낀다고?'

그저 신기하고 사랑스럽기만 한데, 고작 다섯 살이 서른이 넘은 어른에게 건네주는 그 힘에 놀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감격밖에는 없었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불쑥 하리가 물었다.

"엄마 이제 배 안 아파?"

"응. 많이 괜찮아졌어. 하리 진짜 기특하네! 엄마 걱정도 해주고."

"나 유치원에서도 엄마 걱정했어."

나는 그 순간, 맑은 하늘 아래 뜬금없이 흩날리는 비가 된 거 같았다.

너무 행복한데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그런 기분.

하늘은 맑기만 한데 어울리지 않는 비가 내리듯 하리 마음에 감동해서 도리어 슬픈 기분.

그리고 그 순간 정말로 아팠던 배가 다 나은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니 '키우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맞지만 아이가 오히려 나를 자라게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래서 육아란 아이를 만나기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나'와 '세상'을 새롭게 만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하루 아이가 자란 만큼 한 뼘 더 성숙해지고,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가고, 한숨 더 인내하고, 한 움큼의 용기를 쥐는 것. 이것이 아이와 함께 자라 가는 부모의 모습이지 않을까.


나는 따로 챙겨 먹는 영양제가 없다.

그런데 매일 살아갈 힘이 생긴다.

때때로 넘어지고 아프지만 아주 엎드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왜일까? 어째서일까?

아이들을 만나고 나는 그 신비를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도 나를 사랑한다.

내 사랑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은 사랑 그 자체다.

그래서 아이들의 말에는 사랑이 담겨있다.

그 사랑은 곧 힘이다.

그 힘이 나를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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