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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림 Jun 21. 2022

내가 초라할 때

그저께는 내 생일이었다.

이른 오전, 카톡 한통이 왔다.

주방 싱크대 앞에 서서 무심코 카톡을 읽다가 울고 말았다. 갑자기 들이퍼붓는 소나기를 만난 것처럼.



동생은 나보다 열 살이 어리다. 그래서 나는 성인이 되고 돈을 벌면서부터 동생을 데리고 여기저기 많이 다녔다. 카페도 가고 맛집도 가고 여행도 같이 갔다.

동생은 그런 나에게 고맙다고 하지만 사실 내가 동생이랑 같이 있는 것이 좋았다.

터울이 많이 나서 마냥 귀여웠고 그 어느 친구보다 편했고 그냥 함께하는 것이, 존재 자체가 좋았을 뿐인데 그 시절을 떠올리며 고마웠다고 말해주는 동생의 메시지를 읽으니 눈물이 났다.




결혼을 해서 두 아이를 낳고, 5년째 집에서 육아 중인 나.

두 아이 모두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가면서 시간이 생기고, 이전보다 필요한 것과 부족한 것이 점점 많아지는 환경을 마주하면서 다시 '나'를, '꿈'을, '돈'을, '일'을 고민하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돌아보면 나름 큰 후회 없이 열심히 달려왔다 생각했지만 새로운 고민 앞에 내가 그동안 해왔던 일들에 대한 회의감, 앞날에 대한 막막함, 내 스스로에 대한 연약함에 괴로웠다.

내 지난날, 내가 가진 것,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고민하다 그 끝에 마주한 딱 하나의 단어는 '초라함'이었다.

'나 참 초라하구나.'


아이들이 등원하고 남편이 출근한 후, 홀로 아침마다 기도할 때면 식탁 위에 초라한 방울들이 똑똑 떨어졌다.

'나는 가진 것이, 할 줄 아는 것이 너무 없구나.'

눈물을 닦고 다시 일어나면 창 밖의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이 말했다.

"너는 오늘도 이토록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살아있다."

아무렇지 않게 아이들과 남편을 맞는 오후가 되면 그들의 뜨거운 숨결이 말했다.

"오늘도 무사히 돌아왔으니 우리는 평안하고 행복하다."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보다

지금 내가 처한 환경에서 가장 안전하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며 살아왔던 지난 날들.

나보다 가족을 위한 것,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던 시간들을 보냈다.

이제는 그 누구도 탓하지 않고 그때를 후회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자꾸만 초라해지는 것은, 사실은, '나'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가 보다.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포기했던, 환경을 탓하기만 했던, 사랑해주지 못했던 나에게 미안한 것이다.


이런 초라한 나에게 동생이 말했다.

대학교 와보니 참 똑똑한 사람 많더라. 나이에 비해 엄청난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진짜 학구적인 사람들도 많고. 근데 나는 이상하게 주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을 생각하면 언니가 생각나더라. 언니는 흔히 말하는 명문대학에 나오지는 않아도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지혜롭고 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세상을 보는 머리가 성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ㄹ


초라한 ''도 좋아하기로 했다.

나를 사랑하는 이들을 초라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습 이대로 뜨거운 햇살처럼, 뜨거운 숨결처럼 살아내기로 했다.

어쩌면 내가 초라할 때 나는 더 뜨겁게 원하고 애쓰고 사랑하는 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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