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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림 Dec 24. 2021

신혼집에는 엄마가 없다

부쩍 엄마가 자꾸 생각이 난다.

아침에 더 자고 싶은데 오늘 할 집안일을 떠올리니 더 누워있을 수가 없다. 엄마는 더운 날에도 추운 날에도 늘 먼저 일어나 따뜻한 밥을 해놓았더랬다. 그리곤 새벽기도까지 갔던 엄마다. '오늘은 또 뭘 먹어야 하노' 라며 중얼거리던 엄마랑 똑같이 중얼거리고 있는 걸 발견하는 순간 또 엄마를 생각한다.

음식의 간을 보며 내 요리를 맛있게 먹을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기분이 이런 것이었을까. 따뜻한 밥에도 넉넉한 국에도 맛 좋은 반찬들에도 엄마의 미소가 다 스며들었었구나.. 그걸 모르고 나는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엄마가 해준 음식에도 엄마의 손길이 가득가득 묻어있던 내 하루하루들도 결코 그냥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걸 모르고 철딱서니 없는 나는 집이 싫어 화가 날 때마다 엄마는 뭘 해줬냐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지금은 '엄마는 그 긴 세월 어떻게 살았냐고, 아무도 몰라주는 그 삶을 어찌 그리도 미련하리만큼 아무렇지 않게 살았냐고' 혼자 마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어제 새벽에는 그 마음이 진정이 안되어 엄마를 목놓아 부르며 울며 울며 잠들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만 나를 낳아준 엄마가 그리고 그 사랑은 이유를 알 수 없이 날 울리곤 한다.


설거지를 할 때도 싱크대를 등지고 서있던 엄마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하나의 그림처럼 엄마와 부엌 풍경은 그냥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 설거지를 하며 씻겨 내려가는 찌꺼기들과 함께 하루의 고단함도 같이 씻어 내렸겠지. 멍하니 물 내려가는 것을 바라보던 엄마. 왜 맨날 엄마가 멍을 때렸을까. 참 별 것도 아닌 사소한 것까지도 떠오른다.

쓸고 닦고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를 널고 개고... 계속 반복되는 일을 하다 보면 점점 피곤해지고 하루가 참 빨리도 간다.

인생이 그런 건가 보다. 인생살이에서도 우리는 매일같이 쓸고 닦는다. 일을 하고 실수를 하고 다시 수습하고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고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그렇게 사는 건가 보다. 그러면서 깨닫고 배우고 나이를 먹는 건가 보다. 누가 보면 주부 경력 몇 년 차 되는 줄 알겠지만 이제 겨우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나갈 뿐이다.

내 전화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급히 하느라 "내 이야기 쫌 먼저  들어봐라" 커지는 엄마 목소리가 왜 이리 짠한지 모르겠다. "엄마 쫌 작게 말해"라며 늘 구박했던 나지만 엄마랑 이야기할 때의 내가 제일 자연스럽다. 엄마 앞에서의 내가 진짜 나다.


모교회 목사님께서 결혼을 축하하며 써주신 편지를 냉장고 앞에 붙여뒀다. 그분이 그랬다. 행복은 만드는 거라고. 그 식상한 말에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맞다. 만드는 것이다. 음식처럼 청소처럼 빨래처럼. 만들어가는 것이고 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할 때가 되었나 보다. 음식도 청소도 빨래도. 그리고 가정을 만들어가는 것도. 부모를 돌보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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