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의 시간이 흘러가버리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20대 초반, 그때만이 가장 반짝이는 순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들었던 교양 수업에서 교수님은 자기가 대학생 때 너무 치열하게 살았어서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었다. 그 순간이 청춘이라고 생각하던 나는 당시에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얼마나 열심히 살았으면 저런 생각을 하게 될까 궁금했었다.
시간이 흘러 30대가 된 지금, 다시 그때로 돌려보내준다고 해도 나는 가고 싶지 않다. 청춘인 줄 알았던 그때 나는 학기 중에는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바빴고 방학에는 아르바이트를 2개, 3개씩 하느라 바빴다. 그때로 다시 보내준다고 해도 나는 다시 아르바이트에 치여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야 할 것이므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제는 그 수업에서 교수님이 하신 말씀을 알 거 같다. 어쩌면 나도 치열하게 살았던 걸까.
비바람 몰아치던 3월부터 유채꽃과 갯무꽃 피던 4월을 지나 5월에 푸르게 만개했던 수국이 6월이 지나며 노랗게 익고 사람도 녹일 거 같은 7월과 8월까지의 제주살이 체험판이었다. 단순히 여행으로 며칠 와서는 보고 들을 수 없는 것들을 만났다. 내가 궁금했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고 그럼에도 여전히 물음표로 남은 이야기들도 있다. 과거의 수많은 물음표들 중 대다수는 채워졌고 여전히 남은 물음표가 있지만 이제는 그 물음표들에 미련 없다. 앞으로도 물음표로 남겨둬도 괜찮고 언젠가 다시 채워진다면 반가울 이야기들.
사람이 싫어서 제주로 도망쳐 왔는데 여기서 다시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얻어간다. 역시 인간 너무 싫으면서도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3년 넘게 회사에서 지낸 시간보다 반년도 안 되는 이 시간 동안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 좋은 사람들 잔뜩 만나고 많은 걸 보고 듣고 느끼고 등등. 그냥 똑같이 지냈다면 절대 만날 수도 없었을 사람들과 이야기들. 아마 내 평생에, 이렇게나 짧은 시간에, 다양한 이야기들을 한 번에 보고 들을 수 있는 시간은 없을 것이다.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고 지금이 적기였고 평생 잊지 못할 시간들. 무언가를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듯이 이 시간을 보내기 전의 나로 돌아가지 못할 거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으며 돌아가지도 않을 거다. 역시 여전히 서핑을 더 잘하고 싶고 월정리는 아름답고 제주가 좋다.
제주살이로 인한 내 인생의 행로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나의 이 제주살이도 어느 날 문득 떠올려보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겠지. 하지만 지금도 확실한 건, 이 시간들이 내 삶에서 아주 반짝이는 순간들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