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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송이타파스 Sep 13. 2020

07. 문득 할머니의 사진을 남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1,20대 만큼이나 아름다운 할머니의 7,80대를 남겨드릴 걸


 컴퓨터와 카메라 같은 전자기기를 좋아했던 아버지 덕분에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다양한 기기를 접할 수 있었다. 나와는 다르게 사진 모델을 자처하던 언니 덕분에 우리 집엔 카메라가 쌓여갔다. 예전 카메라를 팔고 새로운 카메라를 구입하던 건 아버지에게 취미와도 같은 일이었다. IMF 이후 많은 물품을 정리하고 우리 집에 남은 유일한 카메라는 미놀타 X-300이라는 오래된 필름 카메라였다.


 아버지 나이대가 아니면 카메라를 갖기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2000년대 초반쯤 들어서면서 핸드폰에 카메라가 장착되기 시작했다. 고가에 팔리는 핸드폰 모델에만 카메라가 있었고, 화소와 용량도 굉장히 낮았지만 일상 사진을 찍어 보관할 수 있다는 점은 굉장히 혁신이었다. 2000년대 중반쯤 되면서부터  핸드폰에 카메라가 있는 게 흔한 일이 되었고, 2000년대 후반부터는 카메라 없는 핸드폰은 보기 어렵게 되었다.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내가 대학에 입학할 즈음, 스마트폰 카메라로 일상을 찍어 SNS에 올리는 건 누구나 하는 일이 되었다. 같은 일상을 찍더라도 조금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었던 친구들은 비싼 DSLR을 샀다. DSLR까지 살 정도로 카메라에 관심을 갖고 있던 건 아니었지만, 비싸고 큰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게 보여 부럽기도 했다.


 DSLR 가격을 온라인으로 찾아보고 구매를 포기하던 차에 우연히 방청소를 하다 아버지가 썼던 미놀타 X-300을 발견했다. DSLR이 아니면 어떤가. 쉽게 흥미가 떨어지는 내 성격상 이것도 조금 써보다 그만둘 수도 있는데. 필름 카메라로 먼저 카메라 공부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카메라 전원을 켜고, 필름을 넣는 것부터 공부를 했다. 네거티브니 포지티브니 하는 필름의 종류와 각 제조사별 색감의 차이를 찾아보고 직접 찍어보기도 했다.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 내게 잘 맞는 가장 대중적인 필름 몇 롤을 구매하고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공부했다. 조리개니 셔터스피드니 하는 것들을 말이다. 카메라는 정말 간단한 공식들의 집합이었다. 다만 그 공식들의 조합이 맞아야 내가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었기에 그 수많은 경우의 수를 연습해봐야 했다. 그렇게 몇 년을 혼자 돌아다니며 필름 사진을 찍었다. 감탄할만한 예술사진 같은 건 나와 거리가 멀었지만 내가 원하는 사진의 색감을 찾을 순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인턴생활을 하기 위해 상경하기 전까지 계속 가졌던 취미였다.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찾아보니 풍경과 사물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있던 사람 사진은 친구들과의 추억이나 단체사진, 혹은 남자 친구와의 사진이 다였다. 그렇게 몇 천, 몇 만장을 핸드폰 카메라와 필름 카메라로 찍어왔음에도 가족사진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다못해 지나가는 고양이나 아무 색채 없는 건물 사진도 그렇게 많이 찍었는데 왜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의 사진을 찍지 않았던 걸까.


 가족 외식 때 여기 보라며 자연스럽게 핸드폰으로 가족 셀카를 찍으려 했으나, 막상 카메라를 들이미니 강하게 거부하던 부모님과 장난치는 언니를 보니 왜 그동안 가족 사진을 찍지 않았던 건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문득 할머니의 사진을 남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도 엄마처럼 사진을 부담스러워 하는 성격이지 않을까했지만 그래도 할머니 사진 한 장은 갖고 싶었다. 혹시 할머니가 큰 카메라를 부담스러워 하실까 핸드폰을 가져갔다. 할머니 댁에 놀러 가서 밥을 먹다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꺼냈다. 처음엔 손사래 치던 할머니가 어느새 어색한 표정으로 웃고 계신다. 거울을 꺼내 머리를 정리하고 옷매무새를 다듬으셨다. 수줍게 두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시는 할머니를 보니 신세대 같았다. 찍은 사진을 할머니께 보여드리니 요즘 카메라는 이렇게 작냐며 웃으셨다. 이참에 잘됐다 싶어 멀리 있는 외삼촌들에게 보낼 동영상도 찍자고 제안했다. 어색해하시더니 금세 '안녕~'이라 하신다. '잘 지내제? 몸 건강히 잘 있고~ 밥도 잘 챙겨묵고~'


  그렇게 갑자기 찍은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을 삼촌에게 보내드렸다. 5분도 안 되어 삼촌에게 답장이 왔다. 삼촌은 할머니께 매일 전화를 드리지만 이렇게 영상으로 보니 더 반갑고 좋다고 하셨다. 진작 이렇게 할 걸. 더 일찍 해 볼 걸. 나의 10대, 20대의 순간이 소중했던 만큼 할머니의 아름다운 70대, 80대도 남겨드릴 걸. 손 쓸 틈 없이 날아가는 시간을 이렇게라도 붙잡아 볼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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